[데스크칼럼] 주택 분양보증 독점 깨라

입력 2020-07-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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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현 부국장 겸 부동산부장

'슈퍼 갑(甲)'. 주택사업자(건설사ㆍ시행자)들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이렇게 부른다. 주택을 분양하려면 분양보증을 받아야 하는데 현재 보증을 발급하는 곳은 HUG 뿐이어서다. ‘갑 중의 갑’ 이라고 불릴 만하다.

그런데 최근 주택업계가 HUG의 독점 권한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분양보증시장을 개방해 달라는 거다. 국토부가 산하기관인 HUG를 통해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 분양가를 억누른 게 기폭제가 됐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재건축 사업장(총 1만2032가구)으로 꼽히는 둔촌주공아파트는 기존 주택 철거까지 마쳐 일찍감치 일반분양에 나서야 했지만 반년 가까이 사업 진행이 멈춰서 있다. 재건축 조합은 일반분양가로 3.3㎡당 3550만원을 책정하고 HUG에게 분양보증을 신청했으나, HUG가 주변 시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900만원대가 적정하다며 퇴짜를 놓아서다. 조합 측은 이달 말부터 시행하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선 HUG가 정한 분양가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상당수 조합원들은 분담금 증가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 조합원은 조합장 해임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번 '둔촌주공 분양가 사태'를 계기로 주택 분양보증시장 개방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른 모양새다. HUG의 도 넘는 분양가 규제로 분양 지연 및 사업성 저하를 우려한 주택업계를 중심으로 “분양보증시장 독점 구조를 깨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다.

분양보증은 분양사업자가 부도나 파산 등으로 분양자와 맺은 계약을 이행할 수 없을 때, 보증기관이 대신 사업을 이행하거나 분양대금(계약금.중도금) 환급을 책임지는 것이다. 국내에서 30가구 이상 공동주택(아파트)을 선분양(건물을 짓기 전에 분양하는 것)하려면 보증기관에서 발급하는 분양보증서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현재 분양보증 발급 기관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HUG가 유일하다.

권한이 한 곳으로 쏠리면 남용될 수밖에 없다. 독점 구조에서 갑의 횡포가 나타나고, 무소불위 권력의 힘이 발동하게 마련이다. HUG의 민간 아파트 분양가 통제가 단적인 경우다. HUG는 '고분양가 규제'라는 명목으로 서울 등을 고분양가 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분양보증 전에 분양가 심사를 하고 있다. 분양가 산정 기준을 정해놓고 주택사업자에게 그 안에서 분양가를 책정토록 하는 건데, 최근엔 그 기준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 그렇다고 사업자들이 HUG에 대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HUG가 보증서를 발급해주지 않아 분양이 차일피일 미뤄지면 금융비용 증가 등 손해가 막심해서다.

분양가 규제가 낳는 폐단은 차고도 넘친다. HUG가 민간 아파트 분양가를 찍어누르면서 청약시장은 ‘로또판’이 돼버렸다. 분양가 인하 압박이 분양 일정 지연은 물론이고 서울에서 사실상 유일한 주택 공급원인 재건축ㆍ재개발사업 위축을 불러올 게 뻔하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공급 부족을 낳아 집값 불안을 부추길 공산이 크다.

국토부와 HUG는 "보증시장을 개방하면 아파트 분양가가 치솟을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달 말부터 민간 아파트에도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분양보증 독점→분양가 규제→집값 안정’이라는 명분은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분양가상한제 적용 단지는 더이상 HUG의 분양가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보증시장을 개방하면 신용도가 낮은 중소건설사나 분양리스크가 있는 지방 사업장은 보증 수수료가 높게 매겨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보증료율은 국토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다. 또 중도금 보증 등 다른 상품은 복수의 보증기관이 경쟁하고 있는데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지 않는가.

국토부는 2017년 7월 공정위의 권고에 따라 올해까지 분양보증기관을 추가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3년이 지나도록 후속 조치는 감감무소식이다.

정부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다. 신뢰를 잃으면 정부가 어떠한 정책을 내놔도 시장은 믿지 않는다. 자칫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불합리한 진입 장벽은 경쟁의 무풍지대를 만들어 효율을 떨어뜨린다. 대신 진입 장벽을 낮추면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커진다. 사업자 간 경쟁이 활발해져 상품과 서비스 질이 좋아지고 가격도 내려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HUG도 이제 분양보증 독점이라는 칼자루를 내려 놓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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