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가구 육박하는 대단지에서 전세 물건이 1~2건 밖에 없다는 건 말 다한거 아니겠어요? 씨가 말랐다는 걸 집주인들도 알고 있으니 부르는 게 값이죠."(서울 강동구 고덕동 P공인 관계자)
서울 강동구 고덕지구 일대 아파트 전세시장일 들끓고 있다. 대단지 아파트 입주 폭탄에 반짝 내림세를 보이던 전셋값이 최근 들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 일대 아파트 전용면적 84㎡형 전세 호가는 10억 원을 넘나들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 아파트 전세가격은 지난 주 0.22% 올랐다. 주간 기준 올들어 가장 높은 상승폭이다. 이 지역 전셋값은 현재 21주 연속 오름세를 타고 있다.
강동구 전셋값 강세는 고덕동 고덕지구 아파트 단지들이 주도하고 있다. 고덕지구에 단지 규모가 가장 큰 '고덕 그라시움'(총 4932가구) 전용면적 84.24㎡형은 지난달 7억9000만 원에 전세 거래됐다. 올해 초(5억2000만~6억5000만) 대비 최대 2억7000만 원 가량 뛴 가격이다. 현재 이 아파트 전세 호가는 9억~10억 원에 달한다. 입주 초기인 지난해 하반기 때와 비교하면 많게는 4억~4억5000만 원가량 오른 셈이다.
맞은편 '고덕 아르테온' 전용 84.97㎡형은 지난달 7억 원에 전세 거래 됐다. 연초 전세 거래가 중 최저 수준(5억 원)과 비교하면 2억 원이 뛴 값이다. 이 아파트 역시 현재 호가는 10억 원이다. 최고 호가는 12억 원을 넘어간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계에선 이 일대 아파트 전세시장이 불안한 건 전세 공급 물량이 충분치 않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가을 5000가구에 육박하는 대단지인 고덕 그라시움을 시작으로 고덕 아르테온(4066가구), 고덕 롯데캐슬 베네루체(1859가구) 등이 잇따라 집들이하면서 입주 폭탄이 터졌는데도, 집주인이 직접 거주하는 비중이 늘면서 전세 수요를 모두 소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덕동 P공인 관계자는 "2년을 실거주해야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얻다 보니 자기 아파트에 직접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교육 환경이 워낙 좋아 진입하려는 전세 수요는 많은데 물건이 많지 않다 보니 전세는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했다.
고덕동 바로 옆 동네 명일동 전세시장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올해 상반기 명일동 '래미안 솔베뉴' 아파트에선 전용 84㎡형 전세 거래가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전세 물건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이 면적의 전세 시세도 현재 9억~10억 원에 형성돼 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수개월 새 수천, 수억원씩 오르는 건 이제 예삿일이다. 고덕지구처럼 세제 혜택을 얻기 위해 실거주를 하는 집주인들이 많아진데다 저금리 장기화로 월세로 전환하는 물량 역시 갈수록 많아져서다.
임병철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청약 대기수요 증가와 저금리로 인한 전세 물량의 월세 전환, 의무 거주 요건 강화 등으로 전세시장에 매물이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며 "당분간 전셋값 상승세는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 상한제·전월세신고제) 시행을 앞두고 집주인들이 전세값을 선제적으로 올리면서 서울 전세시장이 요동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임대차 3법이 통과되면 전세 기간은 현행 2년에서 최소 4년으로 늘어나고, 계약 갱신 때 임대료 증액폭은 5%를 넘을 수 없다. 특히 이 법안이 소급 적용될 것으로 알려지자 서둘러 재산권을 행사하려는 집주인이 많아지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고덕동 K공인 측은 "물량도 애초에 없었지만 6·17 대책으로 갭투자(전세 끼고 매입)도 막히고, 실거주 의무도 강화돼 매물이 더 감소하고 있는데, 이런 타이밍에 임대차3법 얘기가 나오니 전세시장이 더 불안해지는 것"이라며 "법 시행을 앞두고 집주인들이 미리 가격을 올리거나 세입자를 내보내고 자가로 직접 들어갈 가능성도 커 전셋값은 앞으로 더 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