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부터 골프장 개발 관련 문의가 늘었어요. 인근 아파트 주인들은 벌써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매수 문의 전화도 늘어나는 등 개발 기대감에 시장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 공인중개사)
"역시나 또 간만 봤네요. 괜히 호가만 올렸던 인근 아파트 단지들만 김이 빠지게 됐습니다.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두고 괜히 일만 키워서 더 거래가 없어지게 생겼습니다." (강남구 세곡동 공인중개사)
서울 집값 안정을 위한 주택 공급 대책이 오히려 시장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꺼내들려고 했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방안'이 무산된 가운데 태릉골프장 부지 등을 활용해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부상하는 과정에서 인근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집값 안정 대책이 오히려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불쏘시개 역할만 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태릉골프장 개발 소식에 인근 부동산 시장 '들썩'
정부는 이달 말쯤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울의 쓸 수 있는 유휴부지를 최대한 끌어모은다는 방침도 세웠다. 특히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을 개발해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을 본격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불과 일주일 만에 '미니 신도시' 후보지로 떠오른 태릉골프장이 속한 노원구 공릉동 일대는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앞서 그린벨트 해제 방안이 무산된 사례로 인해 쉽게 들뜨지는 않는 모습이나 주변 시장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며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공릉동 H공인 관계자는 "며칠 전부터 개발 관련 문의가 늘고 있다"며 "사려는 사람은 꾸준한데 매물이 없어 매수 대기 명부가 꽉 찼다"고 말했다. 그는 "워낙 매물이 귀한 상황이고 실거주자가 많은 지역이라 당장 큰 변화는 없다"면서도 "효성아파트 같이 지역에 노후 아파트가 많은데 골프장이 개발되면 재건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W공인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게 아니지 않나. 지역에 도움이 될지 아닐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몇 가구가 들어올지 임대ㆍ분양 비율이 어떻게 될지에 따라 영향이 달라질 것이다. 대형 단지가 들어선다면 이를 커버하기 위한 교통 대책도 집값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릉골프장 주위로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과 구리시 갈매동에 택지가 개발되면서 벌써 교통난이 지역 문제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개발 기대감에 태릉 주위도 들썩인다. 이달 초 7억8000만 원에 거래됐던 갈매동 '구리갈매 푸르지오' 전용면적 99㎡형 호가는 이번 주 8억3000만 원까지 올랐다. 인근 K공인 관계자는 "어제(20일) 태릉골프장 개발 얘기가 나온 이후 집주인들이 호가를 높이거나 매물을 거둬들인 경우가 몇 건있다"고 전했다.
◇오락가락 대책에 시장 불안은 가중…정책 신뢰감 '뚝'
반면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정부가 먼저 꺼내들었던 그린벨트 해제 방안이 당·정간 갈등 속에 대통령의 한 마디로 없었던 일이 되면서 세곡동과 내곡동 등 강남 그린벨트 인근 부동산 시장은 찬물을 끼얹은 모습이다.
한달 새 1억 원 이상 호가가 올랐던 세곡동 일대 아파트 단지들에는 하루 사이에 매수 문의가 뚝 끊겼다. 세곡동 H공인 관계자는 "정부 관계자들의 섣부른 그린벨트 해제 언급으로 이곳 부동산 시장만 엉망이 됐다"며 "기대감에 값을 올려 내놓았던 주민들은 닭 쫓던 개가 된 신세가 됐고, 진짜 집을 매매하려고 했던 실수요자들은 갑작스런 분위기 변화에 매수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오락가락 대책에 시장 혼란만 가중되는 모습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그린벨트 해제 방안 등의 사태를 보면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을 이슈화하고 있다"면서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에 유의미할 정도의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느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내놓은 태릉골프장 개발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태릉골프장 역시 용도지역이 그린벨트라는 점에서다. 벌써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미래 세대를 위해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정작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태릉골프장을 택지로 활용하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비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