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래미안 크레시티' 아파트에선 27일 보증금 5억3500만 원에 전용면적 59㎡형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동일 면적 기준으로 이 아파트에서 체결된 전세 계약 중 보증금이 가장 높다. 22일 보증금 5억 원에 같은 층에서 전세 계약이 나갔는데 닷새 만에 가격이 3500만 원 더 올랐다.
서울 강동구 '강일 리버파크 4단지'에서도 전셋값 최고 기록이 바뀌었다. 전용 84㎡로만 이뤄진 이 아파트에선 27일 보증금 5억 원대에 전세가 나갔다. 그 전까진 이 아파트에선 전셋값이 4억4500만 원을 넘지 못했다. 같은 단지에서 직전(15일) 체결된 전세 계약(보증금 4억2000만 원)과 비교하면 보름도 안 돼 전셋값이 8000만 원 올랐다.
전셋값 급등 현상은 중ㆍ저가 아파트와 고가 아파트를 막론하고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과 도곡동 일대 고가 아파트에선 집주인이 기존 전세 시세보다 1억 원씩 높게 부르고 있다. 한국감정원 주간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56주 연속 오르는 중이다.
집주인들은 정부ㆍ여당에서 추진 중인 임대차 3법(임대차 신고제ㆍ계약갱신청구권제ㆍ전월세 상한제)이 통과하면 임대 수익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28일 국회에서 "법무부는 (의무 임대 기간을) 2+2년으로 하고 인상률은 5% 범위에서 지방자치단체가 계약 갱신 시에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권은 이미 체결된 전ㆍ월세 계약에도 임대차 3법을 소급 적용하려 한다. 여권은 7월 국회 안에 임대차 3법 입법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 전에 전셋값을 올려야 한다는 조바심이 전세시장 전반에 퍼져 있다.
전세 수요층에선 임대인이 전셋값을 무리하게 올려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서두르고 있다. 전세 부족 현상이 장기화하고 있어서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는 180.1로 2016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수급지수는 높으면 높을수록 전세 부족 현상이 심하다는 것을 뜻한다. 금리 인하로 인한 월세 선호 현상, 청약을 노린 대기성 전세 등이 전세 부족 현상 원인으로 꼽힌다. 전세 품귀 현상에 기존 세입자도 계약 연장을 노리면서 전세 찾기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내년과 내후년엔 올해보다 아파트 입주량이 줄어드는 데다 임대차 3법 중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규제는 소급 입법 여부에 따라 단기 임대료 인상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