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대응 지출 증가로 예비비가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에 50일 가까이 이어진 장마로 수해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재난대응 목적으로 편성된 예산조차 말라버리자 정치권에선 4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 논의가 나오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총력을 다해 수해에 대응하고 복구에 전념해야 할 때”라며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피해 복구를 위한 예비비 지출이나 추경 편성 등 필요한 제반사항에 대해 긴급하게 고위 당정협의를 갖겠다”고 말했다. 민주당뿐 아니라 미래통합당, 정의당, 국민의당 등 야권에서도 4차 추경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앞서 정부는 올해 본예산에서 예비비로 3조4000억 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방역·치료비용, 의료기관 손실보상,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생활지원비 등 지출이 급증하자 1차 추경에서 1조 원, 2차 추경에서 3500억 원, 3차 추경에서 1조2000억 원을 추가 편성했다. 총 5조9500억 원 규모다. 이 중 일반예비비는 1조7500억 원, 목적예비비는 4조2000억 원이다.
남은 예비비는 2조 원가량이다. 기지출 예비비는 대부분 코로나19 방역대응 등에 쓰였다. 다만 방역대응에는 앞으로도 예비비가 추가 지출된다. 2조 원을 모두 수해복구에 투입할 수 없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장기화 추세를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수해복구에 투입할 수 있는 예산은 3차 추경에서 태풍 등 재난대응, 목적예비비 확충 용도로 편성된 1조4000억 원 정도다.
최악의 상황은 현재까지 발생한 수해 피해에 더해 태풍 피해까지 발생하는 경우다. 태풍 피해가 발생하면 남은 예비비로는 대응이 어렵다. 2002년 ‘루사’, 2006년 ‘에위니아’ 때 정부는 추경으로 4조1000억 원, 2조2000억 원을 각각 편성했는데, 이 돈은 전액 피해 복구에 쓰였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더해 수해·태풍 등 재해 피해가 누적된다면 4차 추경 편성은 불가피한 선택이 된다. 이 경우, 재정건정성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미 3차례의 추경 편성 과정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3.5%로 본예산 편성 시 예상치(39.8%)보다 3.7%포인트(P) 올랐다. 재정적자도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게 됐다. 지출 구조조정 여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4차 추경을 편성하려면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이 경우 채무비율은 또 오른다.
4차 추경과 관련해 구체적인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당에서 공식적으로 이야기가 온 게 없다”며 “4차 추경 논의도 언론을 통해 접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4차 추경이 편성된다면, 그 형태는 수해·태풍 피해 복구만을 위한 ‘원 포인트 추경’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정당국은 물론, 여권에서도 국가채무비율 및 재정적자 확대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다. 앞선 2차 추경도 긴급재난지원금 지급만을 목적으로 편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