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계속 보존해야" 文 대통령 약속 깨질 판
서울 도심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놓고 불거졌던 정부와 서울시의 갈등이 재현되는 모양새다. 정부가 주택 공급을 위해 '절대보존구역'을 포함한 서울 남태령 일대 그린벨트 일부를 해제하려고 하면서다. 그린벨트 보전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 약속이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개발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서울 관악구 남현동 한울아파트 일대에 공공주택지구를 지정하기 위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국토부 계획대로면 현재 남태령 군(軍)관사로 쓰이는 이 아파트는 재건축을 거쳐 군 관사 370가구와 신혼희망타운 300가구, 행복주택 100가구로 탈바꿈한다. 국토부는 곧 지구 지정을 위한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들어갈 예정이다.
문제는 공공주택지구 부지 대부분이 그린벨트로 지정돼 있다는 점이다. 공공주택지구 예정지 5만2575㎡ 가운데 94.9%(4만9879㎡)가 현재 그린벨트로 묶여 있다. 아파트가 관악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서다. 아파트를 새로 지으려면 그린벨트는 당연히 풀릴 수밖에 없다.
그린벨트 해제권을 쥔 서울시에선 반발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주택 공급을 위한 그린벨트 해제는 없다는 게 그간 서울시 기조였기 때문이다. 올 여름 정부가 주택 공급을 위해 강남권 그린벨트를 해제하려 했을 때도 서울시는 "개발의 물결 한 가운데에서도 지켜온 서울의 마지막 보루"라며 막아섰다. 서울시 반발이 거세자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개발제한구역은 미래세대를 위해 계속 보존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이후 정부는 그린벨트로는 노원구 공릉동 태릉골프장만 택지로 개발하기로 했다.
이 같은 논란은 한울아파트 공공주택지구 지정 과정에서 되풀이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 내부에선 한울아파트 일대가 "개발제한구역으로서 절대 보존이 필요한 지역"이라며 그린벨트 해제에 부정적인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통령도 (그린벨트 해제 지역으로) 태릉골프장만 말씀하시지 않았나"며 "그것 외에는 서울시에선 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토부는 이번 주택 공급 계획이 대통령 발언 이전에 발표된 데다 보전 가치도 낮다고 주장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말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지만 대부분이 아파트"라며 "기존에 있던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전국 토지의 환경 가치를 나타내는 국토환경성평가 등급을 보면 공공주택지구 부지 가운데 기존 아파트 주변 등 3만1629㎡(61.9%)는 국토부 말대로 보전 가치가 낮은 5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그러나 1ㆍ2등급 그린벨트도 2만919㎡(39.8%)에 이른다. 공공주택지구 부지가 군 관사뿐 아니라 인접한 도시자연공원까지 포함하고 있어서다. 국토환경성평가 1ㆍ2등급은 각각 '절대보전', '상대보전'을 뜻한다. 국토부 측은 "임야지역의 일부 1등급 지역은 최대한 녹지로 남겨두고 개발계획을 짜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지구 지정을 서둘러야 하는 처지다. 국토부는 한울아파트를 재건축해 공급되는 주택 가운데 300가구에 대해 내년 9~10월 사전청약을 실시하기로 했다. 그 전까지 자구 지정을 마치지 않으면 이 일정이 꼬일 수밖에 없다.
그린벨트 해제를 두고 지역 간 형평성 논란이 나올 수 있다. 지난달 정부가 강남권 그린벨트 해제를 포기하는 대신 역시 그린벨트인 태릉골프장을 택지로 개발하기로 했을 때도 강북 그린벨트를 희생시켜 강남 녹지를 보전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노원구와 환경단체 등에선 여전히 태릉골프장 개발 계획을 철회하거나 축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중은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환경적 가치가 낮더라도 도시 성장 관리 측면에서 그린벨트로 보전해야 할 지역이 있고 반면 환경적 가치가 어느 정도 있더라도 도시 계획 측면에서 해제할 수밖에 없는 곳도 있다"며 "불가피하게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경우 대체 녹지를 조성해 도시 녹지 총량을 보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