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원·경비원 등 주된 일자리도 기계로 대체되며 점점 줄어
서울 강남구에서 홀로 사는 최문식(90·가명) 할아버지에게 남은 거라곤 연락이 끊긴 자녀와 오래전 상속받은 지방의 불모지가 전부다. 그런데 자녀와 불모지는 주민등록 등 행정자료상 각각 부양의무자와 자산으로 간주한다. 이런 이유로 최 할아버지는 생계급여 지급대상에서 탈락했다. 밥값이라도 벌려면 부지런히 노인복지센터를 찾아 일거리를 받아야 한다. 최 할아버지는 “땅이라고 있는 건 볼품이 없어 팔리지 않고, 자식들과는 연이 끊긴 지 오래”라며 “요즘에는 코로나 때문에 복지센터도 문을 닫아 종일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만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빈곤은 세 종류로 나뉜다. 먼저 자산도, 소득도 없는 극빈곤층이 있다. 생계급여 수급자로 대표되는 무재산·무소득층은 기초생활제도의 보호를 받는 일종의 ‘제도권 빈곤층’이다. 문제는 최 할아버지처럼 자산만 있고 소득이 없는 경우, 또는 소득만 있고 자산이 없는 경우다. 소득이 없지만 자산의 소득 환산액이 선정기준액을 넘거나, 자산이 없지만 기본공제 후 소득액이 선정기준액을 넘으면 생계급여를 받을 수 없다. 소득 하위 70% 노인(65세 이상)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월 최대 30만 원)만으론 월세나 공과금을 내기에도 버겁다.
현실적으로 빈곤층이지만 제도적으로 중산층인 이들은 차상위계층(잠재적 빈곤층)으로 불린다. 제도권 빈곤층만큼은 아니지만 가난에 시달리고, 언제든 빈곤층으로 추락할 위험이 있다.
그나마 자산이 없고 소득이 있는 노인들은 당장 끼니를 해결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 다만 몸이 아프거나 자녀가 독립해 목돈이 필요할 때가 걱정이다.
최미옥(65·여·가명) 씨는 건강이 안 좋은 남편(67)을 대신해 지난해까지 수도권에서 가게를 얻어 재봉일을 했지만, 일감이 줄면서 가게 임대료와 집 월세를 감당하기도 어려워졌다. 올 초 가게를 정리하고 작은아들이 있는 충청권의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했지만, 생활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소득이라곤 남편이 받는 국민연금 70만 원 정도가 전부다. 집 월세와 관리비 35만 원과 보험료, 휴대전화 이용료를 제외하면 생활비로 쓸 수 있는 돈은 10만 원 남짓이다. 그나마 지금까진 가게 보증금과 재봉틀을 판 돈 등으로 버텼으나, 그것도 이제 1000만 원이 채 남지 않았다. 새 일거리가 생기지 않으면, 시어머니가 홀로 지내는 섬으로 이주해야 할 처지다.
최 씨는 습관처럼 두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결혼할 때 집값을 보태주지 못한 것도 미안하고, 나중에 물려줄 게 없는 것도 미안하다. 이제는 그저 두 아들의 행복만 바랄 뿐이다.
노인 차상위계층의 어려움은 제도 부문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들의 처분가능소득을 늘릴 수단 중 하나인 공공임대주택은 인근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막혀 공급이 지연되고 있다. 공공임대주택이 해당 지역을 ‘서민 동네’로 낙인찍는 ‘혐오시설’로 인식돼서다. 저소득 노인들의 주된 일자리인 주유원과 아파트 경비원, 음식점 종업원 등은 키오스크, 폐쇄회로(CC)TV 등의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 이 때문에 ‘열정페이’ 수준의 저임금에도 소득이 필요한 노인들이 몰린다.
일찍이 주된 직장에서 은퇴해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준노인’ 이상민(62·남·가명) 씨는 “쉴 시간도 없이 주차관리와 분리수거, 순찰 등을 하고 종종 스스로 ‘갑’이라 여기는 주민에게 담배 심부름까지 하지만 한 달에 120만 원 정도밖에 못 받는다”며 “인력소를 통해 어렵게 취업했기에 일자리를 준 것만으로도 고맙지만, 월급은 제발 현실적으로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차상위가구의 존재는 정부로서도 골칫거리다. 그나마 소득만 있고 재산이 없다면 소득이 단절됐을 때 자연스럽게 기초생활보장제도에 편입돼 생계급여를 받지만, 재산만 있고 소득이 없다면 자녀에 손을 벌리거나 별도의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한 밥값을 벌기도 어렵다. 재산만 있는 가구를 위해 주택연금 등 자산 유동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참여가 저조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다른 나라에서 노후 빈곤을 해결하는 방식이 연금인데, 우리는 아직 국민연금이 성숙기에 진입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자산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며 “자산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하면 간단하겠지만, 자산을 마지막 보루 혹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하는 유산으로 여겨 소득이 없더라도 자산을 지키려는 풍토가 강하다”고 말했다.
특히 “자산만 가진 경우, 기본재산과 주거용 재산을 공제한 뒤에도 소득인정액이 선정기준액을 넘어선다면 자산가액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의미”라며 “그런데도 단순히 소득이 없어서 공적부조로 보호해야 한다면, 여기에는 국민적 공감대가 먼저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