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확대 패닉장 우려”…‘대주주 요건 폐지’ 청원 잇따라
국민의힘 ‘대주주 10억 유지·가족 합산 폐지’ 법 개정안 발의
최근 열린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대주주에게 주식 양도소득세를 물리는 소득세법 시행령을 놓고 논란이 뜨거웠다. 정부가 내년 4월부터 대주주의 요건을 특정 종목 보유금액 10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낮추기로 한 데 대해 정치권의 질타가 쏟아졌다. 지난 20일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 등은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3억 원을 고집하는 근거가 무엇이냐”며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으로 유지하고 가족 합산 규정을 없애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작년 사례에 따른다면 시장 영향이 제한적이지 않으냐 생각한다”며 기존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개인투자자들은 “아파트는 몇십억 하는데 주식 3억이 대주주(?)”, “전세도 월세로 바꾸고, 이제 더는 갈 곳이 없다”라는 성토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의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방침에 ‘더는 먹을 게 없다’는 인식이 퍼진 탓일까. 지루한 2300~2400 박스권 장세에 진절머리가 난 것일까.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을 떠나고 있다. 특히 10월 들어 개인의 이탈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23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은 총 1조2731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매달 코스피 매수 우위였던 개인은 10월 들어 매도 우위로 전환했다. 만약 이달 말까지 매도 우위 기조가 이어지면 10월에 개인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코스피에서 월 단위 순매도를 기록한다. 가장 많이 팔아치운 종목은 코스피 대장주 삼성전자였다.
반면 이 기간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1조1578억 원, 3720억 원을 사들이며 개인이 쏟아낸 매물을 소화했다.
양도세 부과에 대한 반감 탓이란 분석이다. 이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2010년 이후 대주주 기준 변경은 총 5차례 있었는데, 그때마다 연말 대주주 지정을 피하려는 개인투자자의 매물 압력이 강화했다”면서 “이번에는 그 강도가 더 커 우려가 크다”고 분석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주주 요건을 현행(10억 원)대로 유지하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청원 글이 이어졌다. 한 청원인은 “증시의 불확실성만 키울 것이다. 패닉장이 불 보듯 뻔하다”라고 했다. 이 청원에는 현재 21만 명 이상이 동의해 답변 대기 중이다. “홍남기 기재부 장관의 해임을 요청한다”고 올린 청원글은 25일 현재 17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그러나 대주주 기준이 10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바뀐다고 해도 총 과세 대상자는 9만3500명(한국예탁결제원 추정) 정도로, 전체 주식 투자 인구의 0.36%에 불과하다.
외풍에 쉽게 흔들리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지적도 있다.
먹을 게 많지 않다. 코스피지수는 23일 현재 2360.81포인트로 지난해 말 2197.67포인트보다 7.42% 오른 데 그쳤다. 노동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국내 주식시장은 공통으로 상승 속도 둔화를 겪는 중인데 낙관론에 가장 큰 배경으로 작용했던 변수들의 현실화 가능성이 감소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기업공개(IPO)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SK바이오팜, 카카오게임즈,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등의 주가가 상장 후 곤두박질쳤고, 대주주와 기관의 잔치로 끝나면서 ‘동학개미’들이 발을 빼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투자처가 다양해진 점도 있다. 미국 주식 직구 열풍 속에 올해 3분기(7~9월)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매매 금액은 620억2000만 달러(약 70조3000억 원)로 사상 최대에 달했다.
KRX 금시장에서 올해 들어 23일 현재까지 하루 평균 금(1kg 기준) 거래대금은 70억8491만 원으로 지난해 평균(22억6094만 원)보다 213.36% 늘었다.
경매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아파트의 10월 낙찰가율은 116.2%로 지난 8월(107.7%)보다 8.5%포인트(p) 올랐다. 지난해 1월 강남3구 아파트 낙찰가율은 90.8%였다가 지난해 7월 101.0%를 기록한 뒤 처음으로 110%대를 넘어섰다.
유혜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