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다국적제약사들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생산 기지로 급부상했다. 안정적으로 백신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동시에 지난 수년간 갈고 닦아온 K바이오의 사업 역량을 글로벌 시장에서 재확인받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바이오기업 모더나가 생산한 코로나19 백신의 국내 위탁생산(CMO) 기업으로 GC녹십자가 유력하게 떠올랐다. 이 백신은 지난 20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긴급사용승인을 받았다.
스테판 반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9일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에서 자사 백신 생산을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에 위탁생산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코로나19 백신의 대규모 공급이 시급한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백신 대량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본 것이다.
GC녹십자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충북 오창공장을 증설해 원료의약품 제조 후 충진·포장 공정(Fill&Finish) 설비를 충분히 마련했다. 해당 공정의 생산 능력은 10억 도즈에 달한다.
앞서 GC녹십자는 국제민간기구인 감염병혁신연합(CEPI)이 지원하는 다국적제약사들의 코로나19 백신의 위탁생산에 합의했다. 2021년 3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5억 도즈를 생산한다는 내용으로, 최종 계약을 앞두고 있다. 해당 계약의 가치는 2조86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GC녹십자 관계자는 "10억 도즈는 하루 8시간 생산 시 가능한 물량"이라며 "2교대, 3교대로 확장할 경우 생산 능력은 더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모더나의 러브콜이 최종 확정될 경우 생산 역량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회사 측에서는 현 시점에서 계약 여부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모더나의 백신은 우리나라에 2021년 2분기부터 공급될 예정이다. 정부는 2000만 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 분량(4000만 도즈)을 확보하기로 했다. 국내에 공급되는 백신이 국내에서 생산된 물량일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집단 감염)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의 선제적인 생산 설비 확충은 한국을 글로벌 백신 생산기지로 도약할 기틀을 마련했다. 전 세계적인 바이오의약품 생산 설비 부족 현상으로 백신 CMO 사업은 갈수록 중요성과 성과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국내 백신기업 후발주자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 역시 아스트라제네카와 노바백스의 백신을 잇달아 수주한 바 있다. 특히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은 SK바이오사이언스가 생산한 물량으로만 국내에 공급될 예정이다. 정부는 1000만 명 분량(2000만 도즈)을 확보했으며, 이르면 2021년 2월부터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다.
코로나 백신의 국내 생산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국가별 백신 확보 경쟁이 치열한 상황인 데다 백신의 보관·유통이 대체로 까다롭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글로벌 승인을 받은 화이자의 백신은 영하 70도 수준의 초저온 콜드체인을 유지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화이자 백신과 마찬가지로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술로 개발된 모더나 백신은 영하 20도에서 6개월간 보관할 수 있으며, 냉장 온도인 2~8도에서는 효능이 30일만 유지된다. 이런 조건에서 국내에서 생산한 백신이 국내에서 공급된다면 보관·유통 등의 과정이 보다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