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반도체 슈퍼사이클 도래를 앞두고 삼성전자의 투자 확대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생산시설 국내 이전(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는 미국 지방 정부들이 삼성전자에 적극적인 증설 유치 작전을 펼치고 있다. 어느 곳이 삼성전자의 새로운 첨단 반도체 기지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 측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라며 신중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지만, 여러 증설 안이 제시되며 대만 TSMC를 추격하기 위한 행보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7일 반도체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애리조나와 뉴욕 등을 증설 후보지로 낙점하고 증설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증설을 검토하는 반도체 공장은 170억 달러(약 19조 원) 규모의 최첨단 공정을 포함한 팹이다.
증설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현재 파운드리 공장이 있는 텍사스주 오스틴이다. 최근 텍사스주 지역 매체 오스틴비즈니스저널은 삼성전자가 오스틴 시와 트래비스 카운티로부터 8억500만 달러(약 9012억 원)가량의 세제 혜택을 지방정부에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만일 요청안이 승인된다면 약 20년 동안 트래비스 카운티에선 7억1830만 달러, 오스틴에 8520만 달러 규모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매체는 이를 위해 삼성전자가 지난달 313장의 감면 신청 서류를 냈다고도 덧붙였다.
트래비스 카운티는 이에 맞춰 '실리콘 실버(Silicon Silver)'라는 기업 인센티브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트래비스 카운티는 지난해 7월 테슬라 기가팩토리를 유치하면서 10년에 걸쳐 세금 환급 형식의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는데, 이와 비슷한 형식의 인센티브 안을 삼성전자에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현지 고위인사들도 삼성전자 투자 행보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말 척 슈머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들과 만나 “삼성의 반도체 공장 증설은 지역에 흥미롭고 잠재적인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지역구인 뉴욕에 투자를 고려해달라는 뜻을 강력하게 피력한 것이다.
앰버 군스트 오스틴기술위원회 회장, 그레그 에봇 텍사스 주지사 등도 최근 삼성전자 증설 투자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은 메시지를 냈다.
업계에선 조 바이든 정부에서도 지속하고 있는 리쇼어링 정책과 경쟁사인 TSMC의 투자일정을 고려했을 때, 삼성전자 역시 조만간 미국 증설 계획을 확정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산업을 '국가 자산'으로 인식하고 자국 생산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수주한 인텔 사우스브리지 물량을 국내 공장이 아닌 오스틴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중앙처리장치(CPU) 등 고도의 기술력과 적시성을 요구하는 첨단 제품이 아님에도 인텔 외주 생산을 기흥 팹이 아닌 오스틴 팹이 담당한 건 국가적 차원의 요구사항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라며 “(따라서) 파운드리 업체 입장에서도 대규모의 미국 현지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2024년 완공 계획으로 5나노 공정 팹을 설립 중이다. 첨단 공정 수주에선 아직 TSMC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삼성전자로선 위협적인 행보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가 미국 팹을 증설한다면, TSMC보다 이른 완공을 목표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 인건비, 인력 풀 등을 고려하면 미국이 시설 투자지로서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다. 특히 반도체 인력의 경우 국내가 훨씬 더 낫다”라면서도 “그러나 미국 정부가 리쇼어링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고, 이에 따라 퀄컴, 인텔 등 주요 팹리스 기업들이 현지 생산기지를 갖춘 파운드리 업체를 선호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에 미국 증설 안이 지속해서 거론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삼성 측도 이를 인식하고 세금 환급 등 최대한의 혜택을 끌어내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