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톡!] 백신 특허와 강제실시권

입력 2021-04-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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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환구 두리암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글로벌 리더 175명이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을 높일 수 있도록 미국이 특허권 효력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긴급 대응’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세계 각국에 코로나19 백신을 평등하게 공급하기 위해 설립된 세계 백신 공동분배 프로젝트인 코백스는 미국과 유럽의 자국우선원칙에 밀려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현재 분배된 7억 도스 중 저소득국가에 돌아간 비율은 0.2%에 불과한데 그 내막을 보면 결국 돈이다.

백신 공급 문제는 결국 생산량의 부족이고, 그 이유는 개발회사가 특허로 울타리를 치고 위탁생산계약을 맺은 소수의 회사에만 생산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위탁생산계약은 정해진 양만 생산할 수 있을 뿐이어서, 아스트라제네카와 이 계약을 맺은 SK바이오사이언스는 국내 공급량도 결정할 수가 없다. 다행히 SK바이오사이언스는 노바백스와 기술이전 계약도 맺었고 계약내용에 특허에 대한 실시권도 포함되므로, 노바백스 백신은 생산능력 범위에서 국내 공급량을 정할 수 있다.

특허법에는 전시나 팬데믹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일정한 절차를 거쳐서 실시료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국내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특허를 강제로 실시하게 하는 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다. 특허권자의 이익보다 대규모 사회적 피해를 막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세계무역기구(WTO)의 부속협정인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에서도 허용하는 제도이다.

이번 공개서한은 이런 법의 테두리 안의 조치로는 어림없다는 호소이다. 당분간 백신에 대해서만은 미국이 지식재산권 협정을 유예해 주면, 각국 정부도 특허법에 얽매이지 않고 백신 생산을 허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제안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특허 보호가 무너지면 추가 백신 연구가 불가능해진다는 주장을 펴지만, 그들의 논리가 일관성을 보이려면 미국이 지나치게 많이 확보한 백신을 해외로 돌릴 수 있는 방안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미국이 여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특허법이 인정하는 강제실시권의 적용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9·11 직후 미국이 독일 회사 바이엘에 강제실시권 설정을 압박해서 탄저병 대응 항생제를 충분히 싼 가격으로 대량 확보했던 사례도 참조하자.문환구 두리암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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