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카카오 같은 빅테크 기업의 금융업 진출로 시중은행의 채용시장이 상전벽해가 되고 있다. 희망퇴직 일정이 계절과 나이에 무관하게 상시 체제로 바뀌는가 하면, 공채 대신 디지털 전문인력을 수시채용으로 전환하는 등 기존 관례가 깨지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로 꼽혀온 금융권 신규 채용이 막히면서 사회 초년생들이 고용절벽에 내몰리고 있다.
신한은행은 14일까지 1972년생 이상 직원에 대해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1월에 220여 명의 희망퇴직을 실시한 후 두 번째다. 반년이 채 되기도 전에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것은 이례적이다. 은행권은 통상 1년에 한 번 연말에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게 관례다. 금융권의 희망퇴직이 계절과 나이에 상관없이 상시 체제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금융권에선 희망퇴직 규모는 늘고 퇴직 연령이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과거에는 희망퇴직이 임금피크제 적용을 앞둔 50대 직원들을 위한 제도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40대도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신한은행의 경우 만 49세부터다. 국민은행의 경우 희망퇴직 신청 가능 연령을 지난해 1964∼1967년생으로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했다. 올해는 1965∼1973년생으로 조정하면서 만 48, 49세들을 희망퇴직 범위에 포함했다.
희망퇴직 연령대가 40대로 낮아지면서 퇴직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이달 말까지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서 희망퇴직자는 2500여 명에 달한다. 신한은행 희망퇴직자까지 더하면 규모는 더 커진다.
문제는 떠난 직원만큼 신입직원을 충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비용이 많이 드는 공채 대신, 디지털 경력직 인재를 수시채용하는 쪽에 힘을 쏟고 있다.
사회초년생들에게 기회의 장으로 여겨졌던 은행권 공채가 사실상 자취를 감추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5개 은행이 채용한 신규 인력은 1300여 명으로 전년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다. 올 상반기 이전과 같은 형태의 대규모 채용이 예정돼 있지 않다. 2019년까지만 해도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상반기 공채를 실시했으나 지난해부터는 디지털 관련 수시채용으로 전환했다. 특수은행인 농협은행과 국책은행인 기업은행만이 상반기 공채를 실시했다.
채용 규모를 밝힌 곳도 디지털에 특화한 경력직 인력을 선발한다. 최근 국민은행은 200명 규모의 신규 채용 계획을 발표했는데 IT, 데이터, 경영관리 전문가, 장애인, 보훈 등 5개 부문으로 한정했다. 이 은행은 ICT 및 IB(투자은행) 전문인력 등에 대해서 상시 채용 시스템도 구축해 운영 중이다.
신한은행도 3월 디지털·ICT 수시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신한은행은 올 하반기 진행될 신입행원 공채에도 디지털 역량을 측정하는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y)’ 평가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같은 달 하나은행은 빅데이터 담당자, 디지털 기획 담당자 등을 수시채용했다. 우리은행도 지난달 디지털/IT 부문에 국한해 상반기 채용을 진행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비대면 영업 확산과 인터넷전문은행 확대 등 금융권에 부는 디지털화 바람이 공채 위주의 전통적인 채용 방식을 바꾸고 있다”며 “디지털 인재 확보를 최우선으로 삼으면서 공채와 연공서열 위주의 은행권 인력구조가 재편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