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책임에도 정책을 초점으로 후보 간에 치열하게 논의하는 장면을 본 유권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은 각 지역구의 현안이 다르고 정권 또는 야당 심판의 성격이 강해 정책이 사라질 수 있다고 하지만 국가의 미래를 놓고 겨뤄야 할 대선에서 정책 논쟁이 사라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대선에서 승부를 결정하는 건 중도층이기에 이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외연 확장이 승부의 핵심이라고 다들 말한다. 그러나 중도층이 무엇을 원하고 고민하는지 심도 있게 생각하지 않기에 후보들은 각종 공약을 쏟아내고 그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타당하고 높은지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문다. 그 결과 정책 논쟁은 증발되었다.
그렇다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대선에서조차 정책 논쟁이 왜 사라지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는 지금도 네거티브 공세에 집중한다. 상대의 정책보다 후보의 언행 중 하나라도 트집을 잡기 위해 혈안인 모습이다. 그렇다 보니 국민들 입장에선 어리둥절한 ‘오피스 언니’ 논란, ‘반듯이’ 논란만 반복되고 있다.
네거티브를 일삼는 선거를 지켜보는 대다수 국민은 눈살을 찌푸리지만 정치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정책 논쟁을 뒤로 하고 네거티브에 주력하는 이유는 네거티브 효과가 그 무엇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유권자에게 미치기 때문이다. 대선주자들은 그래서 늘 상대를 향해 막말, 비하 등 흑색선전을 퍼붓는다.
1985년 미국 정치과학 학술지에 게재된 ‘정치적 행위에 미치는 네거티브 효과’ 논문을 살펴보면 정치인들이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에 왜 주력하는지 그 이유가 자세히 나와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지지정당이 없고 정치에 대해 관심 없는 유권자들이 오히려 네거티브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최악의 후보를 심판하기 위해 투표에 나선다.
중도층은 분명 선거의 승리를 좌우한다. 그런데 정치와 정당에 관심 없는 중도층이 오히려 후보들이 쏟아내는 흑색선전에 관심을 보인 후 투표에 나선다는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 정책도 중요하지만 중도층에는 최악의 후보를 걸러내고 이를 심판하려는 목적이 더 중요하다. 정치인들이 승리를 위해 네거티브에 화력을 집중하는 이유다.
미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국내 언론과학 학술지에 게재된 ‘네거티브 선거 캠페인의 효과’ 논문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연구에서는 후보들이 네거티브 공방을 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 집중하고 지지자 이외 중도를 표방하는 유권자까지 투표 현장에 집결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네거티브는 정치의 필요충분조건인 셈이다.
필자가 2012년 18대 대선 결과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정책적 논쟁보다 중요한 건 후보의 이미지가 얼마나 긍정적으로 비치고 상대 후보를 얼마나 부정적으로 깎아내리느냐가 표심을 결정하는 핵심임을 확인했다. 정책 전문가보다 이미지 메이킹 및 광고 전문가, 프레임을 짜는 심리 전문가들이 선거 승리를 좌우하는 건 불편한 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책이 무의미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정책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5년간 시행착오만 겪다가 끝내기 쉽다. 실제로 대선 승리에만 초점을 맞췄던 대통령들은 당선된 후 경제, 외교안보, 교육문화 등 다양한 현안을 슬기롭게 풀지 못했고 최적의 인재를 등용하지 못해 연이은 정책 실패 등 부침을 겪었다.
선거 승리는 네거티브와 이미지 메이킹이 결정하지만 임기 중 성과와 국민의 지지는 정책의 완성도가 결정하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의 승리에만 집착하면 당선은 될 수 있어도 역사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대통령은 되기 어렵다. 오늘의 승리가 아닌 내일의 미래를 구상할 수 있는 정책을 누가 제안하는지 우리 모두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