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이후 중동 등 세계 주요 산유국들과 미국계 기업인 엑슨, 모빌, 걸프, 소칼, 텍사코 5개사 및 브리티시 페트롤리엄, 로열 더치 셸 등 메이저 석유기업 간 석유 생산과 공급·유통에 관한 갈등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결성 원인이 되었으며, OPEC은 석유 자원에 대한 독점적·배타적 이익 추구 구조를 통해 70~80년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 OPEC을 통한 80년대 생산독점 카르텔은 동시대 세계 정치·경제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90년대 이후 비OPEC 산유국의 생산 증대, 에너지원의 다양화로 인해 중동지역 중심의 갈등이 완화되는 듯하였으나, 21세기 자원 갈등은 또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세계 1위 글로벌 에너지 기업 엑슨모빌은 2009년 360억 달러(약 40조 원)를 투입, 셰일가스 시추 기술을 지닌 XTO를 인수하였다. 이후 미국 내 셰일가스 사업은 확산 일로에 있으며, 미국은 최대 천연가스 및 석유 생산국 그룹에 진입하며 에너지 패권을 둘러싼 경쟁에서 우위를 다져 나갔다. 이에 전 세계적 에너지 공급량 증가에 따른 가격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OPEC 13개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비OPEC 10개국은 OPEC+를 통해 감산 합의를 진행해 왔다.
이와 같이 에너지 패권을 가진 국가들 간 기민한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 안보에 취약한 다수의 산업국들은 전기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믹스의 다양화, 에너지 수입처의 다변화 등을 추진해 왔다. 70년대 두 차례 석유위기에 직격탄을 맞았던 유럽은 당시 냉전 구도에도 불구하고 소련을 통한 천연가스 수입을 통해, 자원 편중 해소 및 수급처 다변화를 꾀하였다. 이러한 전략적 선택은 유럽의 에너지 수급구조를 목적한 바대로 변화시켰으나, 현재 유럽은 러시아의 자원무기화 전략과 동유럽 지역 갈등에 대한 대응이 취약한 구조임을 직시하게 되었다.
유럽연합(EU)은 ‘에너지 및 환경’이라는 21세기 거대한 과제에 직면하여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처하였다. 탄소중립 목표의 이행을 위한 에너지 분류체계에 원자력 에너지와 천연가스가 포함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EU 내 이해관계자들은 오랜 기간 논쟁을 거듭해 왔다. 2000년대 들어 러시아와의 천연가스 공급 갈등을 겪어 온 EU는 2022년 1월 1일 녹색전환을 위한 투자분류 규정에 원자력 에너지와 천연가스를 포함할 것임을 밝혔다. EU 집행위원회가 공개한 ‘녹색산업 분류체계(green taxonomy)’ 초안에는 녹색전환 과도기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해당 에너지원을 인정해야 함이 적시되었다.
티에리 브르통(Thierry Breton) 집행위원은 연합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2050년까지 약 5000억 유로(5650억 달러)에 달하는 원전산업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 하였으며, 녹색전환 과정은 전례 없는 규모의 산업 변화를 이끌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는 지난 2020년 공정전환체계(Just Transition Mechanism) 제안 시 집행위원회가 원전과 천연가스를 배제했던 것과 상반된 정책 제안이기 때문에 당분간 논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안보는 에너지의 안전한 관리, 자원의 안정적 수급, 기후변화에 대응한 지속가능성이라는 3개 핵심영역을 충족하여야 한다. 개별 국가의 주권적 상황에 따라 3개 영역의 목표 추구를 위한 국가적 노력과 국제 연대가 필요하다. 에너지 및 기후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지구환경 보호를 위한 헌신과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한 전환 과정의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