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보낸 군부대 위문편지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국군 장병을 조롱했다', '여고에 왜 위문편지를 강요하느냐' 등 의견이 제기됐고 일부 인터넷 이용자들은 해당 학교 학생들의 신상을 추적하고 비방하기도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14일 "성실하게 병역 의무를 다하는 중에 온라인에 공개된 편지 내용으로 마음에 상처를 받은 국군 장병들에게 심심한 사과와 위로를 드린다"며 "위문편지를 쓰게 된 교육활동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낀 학생들에게도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또한 "학생 신상 공개 등 심각한 사이버 괴롭힘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강한 우려를 표한다"며 "이 과정에 학생들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학생에 대한 괴롭힘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여자고등학교에서 강요하는 위문 편지 금지해주세요'라는 게시글이 올라와 16일 오후 3시 기준 약 14만 명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직장인 권모 씨(29)는 "나도 군 생활을 했지만 위문편지가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며 "분명히 쓰기 싫었을텐데 그에 비하면 학생들이 오히려 무난하게 썼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모 씨(56)는 "학교에서 봉사활동으로 사실상 강요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이왕 쓰는 것인데 힘내라는 한마디 말로 끝냈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이모 씨(25)는 "나도 고등학생 때 위문편지를 썼었는데 불쾌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며 "아직도 이런 것이 있다는 게 놀랍고 남학생에게는 분명 시키지 않을텐데 여학생에게만 시키는 것은 여성이 '위안'을 줘야 하는 대상이라는 성차별적 시각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직장인 이모 씨(30) 역시 "논란이 된 후 학생들을 보호하는 게 우선돼야 하는데 학교에서 그 부분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서 유감"이라고 말했다.
12일 학생들이 공개한 '위문편지 작성에 대한 유의사항'을 보면 △군인의 사기를 저하할 수 있는 내용은 피한다 △지나치게 저속하지 않은 재미있는 내용도 좋다 △끝맺음은 ○○여자고등학교 ○학년 '드림'이라고 한다고 돼 있다.
유의사항에는 "개인정보를 노출하면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으니 학번·성명·주소·전화번호 등 정보 기재 금지"라는 내용도 있는데 학교도 위문편지의 부적절함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유경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활동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순수하고 어린 여자'가 군인의 사기를 돋우어줘야 한다는 시선을 갖고 여고생들을 '기쁨조'로 본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역시 "'위문'이라는 것 자체가 이성애적 성별각본에 매여있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밝혔다. 여학생들이 군인을 상대로 '위문편지'를 쓰는 것 자체가 여성을 위로·돌봄의 제공자, 남성을 수혜자로 간주하는 이성애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위문편지는 군부 독재 시절 잔재"라며 "당시 군대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국민적인 지지를 받기 위해 했던 제도가 아직도 청산되지 못하고 남아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시대의 안보·평화 문제를 학생들이 어떻게 새롭게 사고해야 되는가에 대해 학교에서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예전과 똑같이 '군인은 고마운 존재니까 편지를 써라'라고 강요하니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 대표는 "위문편지 내용을 SNS에 올리고 학교에 찾아가서 피해주고 하는 것은 분명히 여성혐오적 요소가 존재한다"고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