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용자 돈 빌릴 곳이 사라지는데…최고금리 또 인하하나

입력 2022-02-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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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서 연 10%대 최고금리 인하도 주장…대부업, 저신용 대출 축소 움직임

▲정부가 지난해 7월부터 법정 최고금리를 연 24%에서 20%으로 내렸다. 사진은 서울의 한 번화가에 뿌려져 있는 대출 전단지.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해 7월부터 법정 최고금리를 연 24%에서 20%으로 내렸다. 사진은 서울의 한 번화가에 뿌려져 있는 대출 전단지. (연합뉴스)

법정 최고금리의 추가 인하를 위한 정치권의 주장이 거세지면서 저신용자가 합법적 대출 시장에서 밀려날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금융사들은 법정 최고금리 인하가 아니더라도 기준금리 인상으로 자금조달비용이 상승하면서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저신용자 대출의 문을 닫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정 최고금리 인하까지 이뤄진다면 약탈적 대출 방지보다는 되려 높아진 대출 문턱에 저신용자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회에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와 관련한 법안이 10여 건 제출돼 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가 이뤄진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연 최대 10%대로 최고금리를 낮추겠다는 의안까지 나왔다.

앞서 지난해 7월 법정 최고금리는 대부업법·이자제한법 시행령에서 기존 24.0%에서 20.0%로 낮아진 바 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는 고금리로 차입한 저소득 서민층의 이자 부담을 경감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최고금리로 이자를 내고라도 돈을 빌리려는 저신용자의 대출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저신용자들은 1금융권 이용이 어려운 만큼 저축은행,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려고 하지만 대출 비용이 큰 만큼 이들에게 대출을 내어주려는 업체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대부업에서 이 같은 부작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대부업체는 법정 최고금리 상한선에서 대출하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최고금리 인하가 수익성 저하로 직결돼 저신용자 대출 자체를 줄여버리고 있다. 저금리 자금조달과 광고비·인건비 감축을 통한 원가 절감을 통한 수익성 유지 전략도 펼치고 있지만, 한계가 있는 만큼 신규 대출에 대한 문턱을 높이고 목표 고객군을 저신용자 대신 중신용자로 바꿔 대손 비용 절감을 시도하는 등 저신용자 대출의 기회를 줄이는 방안을 택하고 있다.

저신용자의 제도권 금융 접근성이 떨어지는 현상은 과거 법정 최고금리 인하 당시에도 나타났다. 2018년 2월 법정 최고금리 27.9%에서 24%로 인하되자 대부업체는 저신용자의 대출을 크게 줄였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2019년 대부업 이용자 수와 신규 대출액은 53만 명, 4조922억 원으로 최고금리가 인하되기 전인 2017년보다 각각 49.3%, 41.8% 줄었다. 이 중에서도 신용등급 7~10등급의 저신용자의 이용자 수와 신규대출액은 56.1%, 51.0%씩 줄며 고·중신용자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말 대부업 잔액 역시 14조5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8.85% 감소했으며, 이용자 수 역시 138만9000명으로 같은 기간 대비 21.8% 줄어들었다. 최고 법정금리 인하의 영향이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가 한 차례 더 인하되면서 이러한 대부업 위축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 인하 시 31만6000명(2조 원 규모)의 민간금융 이용이 축소되고 3만9000명(2300억 원 규모)이 불법 대출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대부업에서마저 돈을 빌리지 못한 저신용자들은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나거나 대출 사기의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불법 대부업에 의한 피해 신고 건수는 크게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9년 하반기 대비 2020년 상반기 피해 신고 건수는 30%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저금리 대환대출, 통합 대환대출 등을 빙자한 보이스피싱 피해 신고 건수도 32.8% 늘어났다.

업계에서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가 또다시 이뤄진다면 저신용자의 금융 접근성이 더욱 악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부업을 이용하지 못하는 이들은 극저신용자로 법정 최고금리 인상이 이뤄진다면 불법 사금융을 이용하라는 꼴”이라면서도 “하지만 민간 대부업에 수익성 악화에도 저신용자 대출을 지속하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정책적으로 법정 최고금리 인하의 부작용을 완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법정 최고금리 인하를 막을 수 없다면 대부업에서도 밀려난 저신용자를 위한 정책 서민금융상품을 확대하는 등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다만, 정책금융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다면 상업적 서민금융의 시장기능은 약화하고 정부의 부담만 증가하는 서민금융 시장의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만큼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수환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저신용자가 합법적 대출 시장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정책금융을 활용하되, 민간서민금융의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로 인해 시장기능이 취약해지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라며 “정책금융의 활용과 시장기능의 활성화 사이에 균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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