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통하여 조성된 재원을 바탕으로 국가는 작동한다. 현실에서 미진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국가는 공동선을 실현하는 주체이다. 치안, 국방, 교육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복지 지출과 일자리 창출을 통하여 국민 삶의 어려움을 챙긴다. 세법 원칙의 으뜸은 바로 국가가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세금의 부담이 구성원들에게 공정하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칙도 세상을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고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하기는 하나 그 차이와 변화도 일정한 논리적 근거는 있어야 한다.
세금 부담이 구성원들에게 공정하게 분배되는 것이 중요하므로 조세제도의 중심에는 자연스럽게 소득세가 위치하게 된다. 세금의 부담은 고통의 분담이므로 가족이나 회사가 아닌 고통을 실체적으로 느끼는 주체인 개인을 전제로 해야 공정한 분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소득세는 개인의 소득을 누락시키지 않고 종류별로 모두 파악하여 합산한 다음 이를 과세하는 것인데, 합산된 개인의 소득에 적용되는 세율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이는 세금의 배분이 고통의 균등한 분담이라면 소득의 한계효용이 체감하므로 소득이 높은 이들의 추가적인 소득에 대하여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고통의 균등한 분담에 해당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법인세, 부가가치세, 상속세 등의 세목들도 공정한 과세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기능을 가지는데 소득세와의 연계 관계를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개별 세목들은 커다란 조세 체계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우선 부가가치세로 대표되는 소비세를 보면 소득세와 달리 소비를 과세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소비가 과세 대상이 된 것은 경제적 능력을 비교적 잘 드러내는 특징을 가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소득세보다 소비세나 관세가 먼저 주요 세목으로 자리 잡은 것도 그 때문이다. 즉 소득은 이를 파악하는 데 비용이 수반되는 어려운 과세 대상이나 소비는 재화의 거래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포착된다. 상속이라는 사안을 제외하면 사람들은 소득을 시차가 있지만 언젠가는 소비한다. 그러므로 소득보다 소비를 중심으로 경제적 능력을 파악한다면 과세당국은 상대적으로 비용을 적게 들이며 과세할 수 있다. 결정적인 단점은 위의 언급대로 상속의 문제가 있으며 그 외에 누진세율 적용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발전과 함께 개인의 자산축적과 상속자산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세금 전체에서 소비세의 비중이 커지면 상속자산의 형성 과정과 상속 과정에서 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가벼워진다. 소비세는 누진율을 적용하기 부적절하니 고통의 균등한 분담의 차원에서 열등하다.
소득세와 소비세를 병행 과세함으로서 징수 비용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전체 세수입에서 소득세 분야의 세수입보다 소비세 분야의 세수입이 더 커지는 일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면 미국 등 주요국에 비하여 우리의 소득세 비중이 현저하게 낮다. 공정한 과세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세입 구조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경우 향후 세제 개혁에서 소비세 분야에서 누진율 적용이 어려운 점을 보완하는 제도적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 우선 소득세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부가가치세의 경우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유럽 주요 국가들이 과거 부가가치세율을 인상하면서 가장 어려워했던 사안이다. 향후 몇 년간 세계는 인플레이션 관리가 가장 중요한 경제 현안 과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부가가치세율을 건드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짧은 생각이다. 부가가치세제 분야에서는 생필품에 대한 경감세율 적용을 도입하여 서민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다. 증세는 소득세 분야에서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와 금융 및 자산소득에 대한 종합과세, 그리고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의 조정을 통한 실효세율 인상을 통하여 달성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