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정치의 1번지는 용산이다. 윤 대통령이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면서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과 함께 추진한 집무실 이전은 예산과 절차, 안보 공백, 오염 등이국민 소통과 대립각을 세웠다. 예산 문제, 안보 공백 우려 등은 여야의 입장과 상황에 따라서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를 놓고 신구 권력 간 갈등까지 빚어졌다. 하지만 반환되는 미군기지의 오염문제는 철저한 ‘과학의 영역’이다.
서울 정중앙에 위치한 용산 미군기지 반환 논의는 2004년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YRP) 체결로 시작됐다. 이후 2008년까지 이전을 완료하겠다던 원래 계획은 2016년에서 다시 2018년으로 계속 연기됐다. 실질적으로 용산기지의 반환 협상이 시작된 것은 2019년이다. 현재 전체 반환 면적인 203만㎡ 중 10.7%에 해당하는 21.8만㎡가 반환됐다. 작년 7월에 용산 집무실 주변 부지 50만㎡는 반환 합의로 이달 10~19일 열흘간 시범 개방됐다. 그렇다면 수년 전에 14조 원을 들여 경기도 평택에 새로운 기지를 제공했음에도 용산기지 반환은 왜 더딘 것을까. 기지 내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 공방 때문이다. 환경부 조사 결과, 구리·벤조피렌 등 발암물질이 다수 검출됐다. 일부 지점에서는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기준치보다 34.8배 초과 검출됐다는 심각성은 이미 알려진 내용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용산공원 오염 우려는 과장됐고, 안전 문제가 전혀 없다”고 했다. 9월 임시 개방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용산기지 시범·임시개방은 법치주의에 부합하는 것일까. 특정 용도로 쓰이는 부지에 허용되는 토양오염 기준은 ‘토양환경보전법’으로 규정한다. 해당 환경부령인 토양환경보전법 시행규칙에는 토양오염 우려기준을 지목(地目)에 따라 1·2·3지역 세 단계로 구분하고 23개 유해 물질의 단계별 허용 기준치를 정해 놨다. 주거, 학교, 공원, 어린이 놀이시설은 1지역으로 분류한다. 용산공원 부지는 1지역 오염 기준치를 충족해야만 한다. 최근까지 정부가 반환받은 용산기지 부지에선 1지역 오염 기준치를 크게 웃도는 오염물질들이 검출됐다고 환경부가 발표했다. 실정법상 반환받은 용산기지 부지는 공원 조성에 앞서 확인된 오염물질부터 제거해야 한다. 정화작업이 선행되지 않고선 공원으로 조성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시범 개방 기간에는 공원 내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2시간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건강에 영향을 미칠 만큼의 유해 물질 접촉은 이뤄질 수 없다”고 했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개방 용지의 토양에 유해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머물 경우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정치적 이벤트를 위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그렇지 않다면 안전을 입증할 구체적 숫자나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돼야 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견해가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조정·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맞다. 용산공원 개방 문제는 과학과 진실이 무엇보다 핵심적인 요소다. 또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했다. 맞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나와 내 가족이 밟고 있는 땅이 건강과 안전을 위협한다면 온전한 쉼터가 될 수 없다. 윤 대통령의 법치에서 매번 등장하는 말이 있다. “미국(선진국)에서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미국의 군대가 환경오염의 철저한 사각지대였다. 그곳을 반환받아 삭막한 도심 한복판에 대규모 녹지를 조성하는 절차다. 법치와 함께 정의로운 공간의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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