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의 등장 이후 인공지능(AI)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AI 시장 규모는 2030년에 153억 달러, 글로벌은 8267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법률 분야는 신뢰성과 정확성이 요구되는 특성상 보수적인 접근을 취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분야에서도 AI 기술 도입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대법원은 내년부터 차세대 전자소송시스템에 AI를 적용해 유사 판결문 추천과 소송 절차 안내 기능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는 AI가 법률 절차의 복잡성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허 산업 역시 법률 분야와 마찬가지로 방대한 양의 문서를 처리해야 하며, 복잡한 데이터 분석과 관리가 필수적이다. 특히, 특허 정보는 기술적 세부사항이 구조화된 데이터로 구성되어 있어 AI 모델이 기술적 맥락과 패턴을 학습하는 데 유리하다. 또한 오랜 기간 축적된 공개 자료 덕분에 AI 학습에 적합한 대규모 데이터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 해외 IP 전문가들은 AI가 특허 업무의 반복적이고 단순한 작업을 지원하는 데 유용하며, 앞으로 5년 내 대부분의 특허 실무자들이 이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AI를 활용한 특허 명세서 작성 관련 스타트업도 국내외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 스타트업은 대형 언어 모델(LLM)이 명세서의 형식, 스타일, 구조적 요구사항을 이해해 초안을 신속히 작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는 DeepIP, Claim Master, PowerPatent와 같은 스타트업들이 AI 기반 명세서 작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글로벌 데이터 서비스 회사인 Clarivate는 AI 특허 초안 작성 프로그램인 Rowen Patent를 개발한 스타트업을 인수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젠아이피(GenIP)가 변리사를 위한 생성형 AI 기반 청구항 작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패튼에프티(PatentFT)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이를 분석해 명세서 초안을 작성해 주는 프로그램을 내년에 출시할 계획이다.
그러나 AI를 활용한 명세서 작성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미국 특허청(USPTO)은 특허 출원 및 심사에 AI를 적용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AI 기반 특허 출원 보조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실무자가 결과물을 반드시 검토하고 수정해야 하며, 데이터 보안 및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가이드라인을 지난 4월 발표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AI가 특허 업무 과정에서 유용할 수 있지만, 결과물의 정확성과 데이터의 보안을 보장하기 위해 여전히 전문가의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 특허 업계는 아직 AI 도입 초기 단계에 있지만, 글로벌 사례와 국내 스타트업의 도전이 한국 시장에 중요한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 AI는 특허 산업을 포함한 다양한 법률 분야에서 복잡한 작업을 간소화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유용한 도구로 자리 잡고 있지만, 변리사의 역할을 대체하기보다는 이를 지원하고 보완하는 형태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AI와 전문가의 협력이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은주 삼성벤처투자 투자심사역·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