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내선 항공기 안의 풍경은 무척 다르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승객들은 앞줄부터 차례대로 내렸다. 웬만해서는 한참 전부터 일어나서 기다리지도 않는다. 차례대로 내릴 것이기에 미리 일어나 있을 필요도 없다. 간혹 앞 승객이 짐을 챙기느라 꾸물대어도 뒷사람은 끼어들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 준다.
몇 년 전 하와이에서 전통 공연을 보면서 저녁까지 즐길 수 있는 행사에 간 적이 있다. 한쪽에 음식이 뷔페식으로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고 무척 의아했었다. 수많은 관객이 어떻게 음식을 혼란 없이 가져갈지 의문이 들었던 까닭이다. 관객들은 긴 테이블에 그룹별로 앉았는데, 비싼 입장료를 구매한 순으로 뷔페를 이용하라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다만 어린이는 자릿값과 상관없이 제일 먼저 음식을 가져오게 했다. 진행요원이 따로 입장표를 확인하는 절차 없이도 대부분 미국인이었던 관객들은 안내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자기 순서를 지켰다. 만약 관객이 한국인이었다면 어땠을까?
한국인의 급한 성격은 널리 알려져 있다. 국민성을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분명 집단 구성원의 동질적 성격과 행동양식은 어느 정도 확인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로마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기 이전 시기에 가장 많은 순교자가 나온 북아프리카 지역 사람들의 다혈질적인 성격처럼 말이다. 아무튼 앞의 항공기 사례는 에티켓과 관련되므로 고칠 면이긴 하나, 그렇다고 하나만을 놓고서 한국인의 기질 전체를 좋다 나쁘다는 식으로 판단할 순 없다. 우리의 장점은 유지하고 단점은 고쳐나가면 될 일이다. 그런데 정부 정책이 성격 급한 한국인을 나쁜 쪽으로 더 부추기기도 한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그 단적인 예다.
독일의 저명한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브루흐(G. Radbruch)는 법적 안정성을 법이 추구하는 세 가지 목적(정의, 합목적성) 중 가장 우선하는 것으로 새긴 바 있다. 그는 실정법의 내용이 설사 정의롭지 않고 비합리적이더라도 일단은 법적 안정성이 정의보다 앞서므로 실정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보았다. 물론 그 한계는 있다. 정의에 대한 실정법의 모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정의가 법적 안정성을 제친다. 라드브루흐의 공식이라고도 알려진 내용 중 일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호떡 뒤집듯 법을 이랬다저랬다 쉽게 바꿔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법적 안정성은 예측 가능성과 신뢰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법적 안정성이 흔들리면 가뜩이나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복잡도는 더 심해진다. 경제주체의 행위를 위축시키거나 잘못된 판단으로 이끌 수 있다. 불필요한 거래비용도 증가한다. 단기보다 장기금리가 높은 이유 중 하나도 예측 가능성 저하에 대한 보상 탓이다.
이미 보았듯 문재인 정부에서의 잦은 부동산 관련 세법 개정은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세법을 졸속으로 그것도 아주 복잡하게 개정해 놓으니 법 해석에 큰 혼란이 일었다. 주택이 소재한 지역이나 가격, 보유 기간 등 상황별로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세무상담을 피하는 세무사도 부지기수였다. 국세청에 문의가 빗발치고 뒤늦게 ‘주택세금 100문 100답’이라는 책자를 배포하기에 이르렀다. 졸속 개정은 세법 간 정합성을 깨는 등 여러 흠결을 낳고 다시 이를 보완하기 위한 후속 개정이 나오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결국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쳤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성급하거나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시장만능주의를 추앙하는 것도 문제지만 정부만능주의를 신봉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 대통령 임기 내 세법 개정을 몇 회로 제한하겠다는 내부 규칙을 마련하는 것도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