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는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하여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저소득층과 고령층, 농어민, 장애인 등 디지털 취약계층에 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일반 국민 대비 디지털 취약계층의 디지털 격차는 5년 전 35%에서 25%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그러나 정보와 디지털 기기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늘었지만, 정보를 올바로 판단하고 디지털 기기를 원하는 목적대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 디지털 문해력(리터러시)은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문해력이란 특정한 사용 맥락에서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서면 형태(쓰인 형태)로 이해하거나 표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읽고, 쓰고, 생각하는 특정한 방법을 의미한다. 국민보통교육 또는 초등교육이 인쇄술 시대에 주로 문해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문해력은 ‘서면 형태’ 대신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여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읽고, 쓰고, 생각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디지털 기기를 보급하고 사용하는 방법의 교육에 치중하였는데, 정말 중요한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올바로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나 생각으로 발전시키는 능력을 키우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디지털 문해력 평가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사실과 의견을 식별할 줄 아는 능력’은 25.6%로 OECD 평균 47%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학교에서 정보의 주관성과 편향성 교육을 받은 비율’은 OECD 평균 54%보다 낮은 49%이다. 국어의 읽기는 OECD 5위인데 정보 신뢰성 평가 능력은 꼴찌 수준인 것이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의 신뢰성 판단이 문해력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잘못된 정보에 입각하여 생각하게 되는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가 거짓 정보에 쉽게 속고 거짓 정보에 입각해서 분열되고 있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단초를 제공해 준다.
최근에 인터넷상에서 ‘심심한 사과’ 표현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주로 젊은 층이 이용하는 사이트에 게시된 글을 보고 ‘심심한’을 ‘심심하다(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다)’로 이해하고 반발하였다. ‘심심(甚深)한(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한)’이라는 한자어가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생뚱맞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까지 디지털 문해력 문제를 거론하게 하였다. 사실 이것은 디지털 문해력 이전에 잘못된 한글 사용이 가져온 문해력 문제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툭하면 ‘심심한 사과’를 반복하였다. 아마 그동안 젊은 층은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사과를 하는 사람은 혼란스러운 용어를 즐겼을 수도 있다.
세계 최고의 문자를 자랑하는 한글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낮은 문맹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를 되돌아보면 한글은 소통의 문자였지, 지식 창출의 문자로 쓰이지는 못했다. 사대부, 지식인들은 한자로 지식을 나누고 지식을 생산했다. 지금은 또다시 지식 창출, 학문의 언어로 영어에 밀리고 있다. 한자어, 영어보다 한글을 더 적극적으로 지식 창출 언어로 사용할 때 국민들의 문해력, 언어능력도 높아질 수 있다.
디지털 격차 해소를 넘어, 정보의 수용과 접근을 넘어, 정보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소비할 수 있는 능력, 정보와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교육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