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보호 수준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정보비대칭성을 특징으로 하는 금융시장에서 모든 가능한 경우의 수를 법 규정에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의 현실 적합성과 법 집행의 합리성을 위해 원칙중심의 도입이 필수적이다."
22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체계 현황과 개선과제 - 원칙중심 감독체계로의 전환 가능성에 대한 논의' 세미나에서 김자봉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원칙중심의 금융규제체계 도입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세미나는 규정중심 규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금융감독체계의 문제점을 짚고 원칙중심 감독 체계로의 전환과 체계 개선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세미나에 참석한 금감원, 금융위 관계자들과 금융법 전문가들은 '원칙중심주의'를 금융감독체계의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김 연구원은 "원칙중심의 도입이 규정중심을 배제하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규정과 원칙이 합리적으로 상호보완하고 자율과 책임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원칙중심 금융규제의 지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업 진입규제에 대한 법적 검토'를 주제로 발표한 최승필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은행업 진입규제에 원칙주의 감독과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많은 검증과 논의가 필요하다"며 "진입 규제의 요건을 규범 체계 내에서 구체화해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금융감독 당국의 재량권은, 앞으로 어떤 형태의 위험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필요하지만 당국의 재량권에 대한 기준으로서의 '원칙'을 제시하면 재량권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며 "당국의 재량권에 원칙중심 감독을 얹을 때 재량권 방향도 합리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연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칙중심규제는 규제의 '결과'를 중시하고 금융회사의 자율성과 감독기관과의 지속적 소통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 있어서 유의미하다"며 "원칙중심 규제가 규제 완화의 수단으로만 동원되면 안 되고 소비자 보호 수준을 높이기 위한 방향으로 집행돼야 한다"고 했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장 시급한 것은 제재 절차에 관한 사항을 법률에 규정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금융기관의 건전한 운영을 저해한 경우’ 등 추상적으로 정하고 있는 제재 사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해서 제재권 남용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
발표 이후 진행된 토론에서 전문가들은 원칙중심주의 전환에 관한 어려움과 우려도 짚었다.
송옥렬 서울대 법학과 교수는 원칙중심주의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칙중심주의는 '원칙만 던지자'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규정과 공존하되 규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방식이 원칙 중심이라서 '규정에 얽매이지 않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금융업자들의 자율적인 규제를 용인해주는 문화가 조금씩 만들어지면 원칙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채윤 변호사는 "금융감독 체계가 원칙중심이 되면 실무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책임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있다"며 "책임의 기준, 배분, 책임에 따른 제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훈 금융감독원 수석은 "원칙중심 감독체계로 전환하려면 감독당국이 규정에서 벗어난 판단을 현실에 맞게, 합리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법원, 감사원, 언론 등 감독 당국을 감독하는 기구들이 감독당국의 재량권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 때문에 (원칙중심으로의 전환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원칙중심의 제재 집행을 먼저 하고 규정체계는 점진적으로 바꾸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김연준 금융위원회 은행과장은 "원칙은 예방적, 보완적 측면에서 적용하고 제재가 불가피한 경우 규정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원칙과 규정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