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발 부동산 시장 불안이 실물경제로 번지고 있다. 1군 건설사가 경기 핵심지에서 508가구 무순위 청약(줍줍)을 진행했지만, 단 6명만 신청하는 이례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최근 집값 하락에 청약 경쟁률이 시들해졌다곤 하지만, 브랜드 단지에 한 자릿수 신청자가 몰린 것은 그만큼 시장 불안이 일반 수요자까지 확산한 것으로 풀이된다. 건설업계는 이번 대규모 청약 미달 사태를 시작으로 향후 청약시장 전체가 얼어붙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26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경기 의왕시 내손동에 짓는 ‘인덕원자이SK뷰’ 508가구는 전날 무순위 청약을 받은 결과, 최종 6명만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단지는 GS건설과 SK에코플랜트가 총 899가구 규모로 짓는 단지로 청약 당시 경쟁률은 5.6대 1로 준수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호재로 집값이 급등한 인덕원 근처에 대형 건설사인 GS건설과 SK에코플랜트가 짓는 브랜드 단지임을 고려하면 이번 무순위 청약 결과는 처참한 수준이다.
전체 11개 평형 중 7개 평형은 단 한 명도 신청자가 없었다. 실거주 수요가 많은 전용면적 74㎡형과 99㎡형 5개 평형 중 전용 74A㎡형에만 두 명이 신청했고, 나머지 평형은 신청 가구조차 없었다. 지난 24일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 경기 안양시 동안구에서 분양한 ‘평촌 두산위브 더 프라임’ 역시 111가구 모집에 27가구만 지원하는 등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주택 실수요자들이 청약시장에 등을 돌린 것은 레고랜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상환 미지급 사태로 시작된 시장 불안 심리가 고스란히 실수요자에게 전파된 것으로 해석된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아파트 분양시장은 현재 시세와 분양가격간 차액이 발생하고, 분양받은 이후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가 더해져야 활성화된다”며 “하지만, 최근 집값 내림세가 계속되는 데다 건설업계를 진원지로 한 금융위기설이 퍼지자 실수요자의 집값 상승 기대감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저조한 청약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건설업계는 금융권의 PF 대출 중단 영향으로 부도 공포가 일파만파 확산 중이다. 지난 21일에는 1만2032가구를 짓는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은 7000억 원 규모 PF 차환에 실패했다. 일반분양 물량만 4786가구에 달해 사업성을 갖춘 현장이지만, 자금시장 경색 우려에 투자자들이 발을 뺀 것이다.
이에 둔촌주공 시공사업단 중 한 곳인 롯데건설은 둔촌주공을 포함한 정비사업 우발채무 발생에 대비해 계열사로부터 5000억 원을 금전 대여받고, 2000억 원을 유상증자하는 등 비상 체제를 가동하기도 했다.
이렇듯 부동산 경기 침체기에 주택 매수심리까지 얼어붙어 미분양이 늘면, 중소 건설사를 중심으로 부도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 원자잿값과 인건비가 많이 올라 가뜩이나 자금 압박이 큰데 미분양에 입주까지 문제가 발생하면 시행사에 하청 업체까지 모두 휘청일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에는 대형사도 안심할 수 없는 만큼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등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분양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연말을 넘어 내년 상반기까지 분양시장 침체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건설사의 각자도생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인덕원뿐 아니라 수도권 전체에서 청약 경쟁률이 하락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분양가와 입지가 애매한 곳은 청약 성적이 더 안 좋아지는 ‘양극화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