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 보여준 뉴진스…한계는 외부에 있다는 ‘아이러니’ [이슈크래커]

입력 2023-01-0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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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 ‘OMG’ 뮤직비디오 캡처 (출처=유튜브 채널 ‘HYBE LABELS’)
▲뉴진스 ‘OMG’ 뮤직비디오 캡처 (출처=유튜브 채널 ‘HYBE LABELS’)

그룹 뉴진스의 인기가 뜨겁습니다.

지난해 8월 앨범 1집 ‘뉴 진스(New Jeans)’로 데뷔한 뉴진스는 가요계에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앨범은 발매 첫 주 31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 역대 걸그룹 데뷔앨범 초동 신기록을 경신했고, 미국 유명 음악지 롤링스톤 ‘올해의 베스트 앨범 톱(TOP) 100’에도 선정됐습니다. 타이틀곡 ‘어텐션(Attention)’, ‘하이프 보이(Hype Boy)’는 국내 음원 차트 최정상을 오랜 기간 지키며 인기를 끌었죠.

이달 2일 발매된 새 싱글 앨범 ‘오엠지(OMG)’도 각종 음원 차트 상위권을 석권했습니다. 4일(현지 시각) 미국 음악 전문 매체 빌보드가 발표한 최신 차트(1월 7일자)에 따르면 지난달 선공개 된 수록곡 ‘디토(Ditto)’는 글로벌(미국 제외) 11위, 글로벌 200 26위에 오르며 각각의 차트에서 자체 최고 순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번 싱글 앨범은 발매 첫날에만 48만 장 넘게 팔리며 역대 걸그룹 데뷔앨범 초동을 또다시 경신했죠. 아이돌 음악의 주 향유층인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관심도 뜨겁습니다.

뉴진스, 이들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요?

▲(사진제공=어도어)
▲(사진제공=어도어)

철저히 계산된 자연스러움…민희진 기획력 빛났다

뉴진스는 데뷔 전부터 ‘민희진 걸그룹’이라는 수식어로 주목받았습니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SM엔터테인먼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으로 에프엑스, 샤이니, 레드벨벳 등 톱 아이돌의 콘셉트를 진두지휘한 ‘브랜딩의 달인’입니다.

실로 뉴진스는 데뷔 당시 ‘자연스러움’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긴 생머리에 옅은 화장, 스포티한 의상까지. 4세대 걸그룹에서 당당하고 진취적인 모습이 강조되며 ‘걸크러쉬’ 콘셉트가 인기를 끌었다면, 뉴진스는 청량하고 풋풋한 이미지로 하이틴 영화 같은 모습을 뽐냈죠.

또 특별한 세계관, 캐릭터를 내세우며 차별화에 나서는 타 그룹들과 달리 뉴진스는 편안한 스타일링과 메이크업, 친구와 함께 노는 듯한 모습을 담아낸 뮤직비디오·무대 연출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데뷔곡 ‘하이프 보이’에서도 멤버들은 짝사랑하는 소년들과 귀엽게 ‘썸’을 타다가 실망스러운 결말을 맞지만 서로가 있어 즐겁게 웃을 수 있다는, 십 대가 공감할 수 있는 풋풋한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Y2K 콘셉트도 인기에 한몫했습니다. 멤버들의 스타일링, 무대 연출뿐 아니라 공식 홈페이지, 굿즈 등도 기성세대의 문화를 담아내며 인기를 끌었는데요. 공식 홈페이지와 전용 소통 앱 ‘포닝’은 화면 구성과 폰트, 이미지 등으로 2000년대 유행했던 채팅 프로그램을 연상케 하고, 굿즈 ‘뉴진스 백’은 CD 플레이어 모양으로 제작됐습니다. 기성세대가 뉴진스를 보며 향수에 젖었다면, 신세대는 ‘힙한 뉴트로’ 감성에 취했습니다.

▲뉴진스 ‘OMG’ 뮤직비디오 캡처 (출처=유튜브 채널 ‘HYBE LABELS’)
▲뉴진스 ‘OMG’ 뮤직비디오 캡처 (출처=유튜브 채널 ‘HYBE LABELS’)

인기와 논란은 비례?…로리타 콘셉트부터 쿠키 영상까지 ‘갑론을박’

승승장구하는 성적, 신입답지 않은 능숙한 퍼포먼스, 다채로운 매력 등으로 신드롬급 인기를 자랑하는 뉴진스지만, 최근에는 거센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이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을 부른 것입니다. 문제의 장면은 ‘오엠지(OMG)’ 뮤직비디오 말미에 등장했습니다.

‘오엠지’ 뮤직비디오는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합니다. 멤버들은 환자복을 입고 각자의 사연을 털어놓습니다.

먼저 하니는 자신이 아이폰이라고 주장합니다. 당신을 위해 말하고 노래를 부르며, 또 당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강조하죠. 민지가 “그럼 네가 시리라는 얘기냐”고 묻자, 하니는 시리의 음성으로 “그렇다”고 밝히죠. 해린은 자신을 고양이로 생각하는가 하면, 혜인은 자신을 동화 속 주인공으로 여기며 신데렐라, 성냥팔이 소녀 등으로 변신합니다. 다니엘은 “우린 뉴진스고, 지금은 뮤직비디오 촬영 중”이라며 다른 멤버들을 답답해합니다. 자기 자신을 엉뚱한 요소와 빗대는 멤버들은 대중의 말에 휩쓸려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이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6분을 넘는 긴 분량의 뮤직비디오 말미에는 쿠키 영상이 있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등장한 누군가는 한 SNS 플랫폼에 ‘뮤비 소재 나만 불편함? 아이돌 뮤비 그냥 얼굴이랑 안무만 보여줘도 평타는 치(는데)’라는 게시물을 게재하는데요. 뒤에서 나타난 민지는 “가자”며 해맑은 얼굴로 그를 어딘가로 이끕니다.

이 장면을 놓고 해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뉴진스의 음악을 함께 즐기자는 ‘권유’, 혹은 억지 논란을 만드는 행위를 질병에 빗댄 ‘응수’라는 것입니다.

또 일각에서는 해당 장면이 앞서 불거진 타이틀곡 ‘쿠키’ 논란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멤버 전원이 미성년자인 뉴진스는 데뷔와 동시에 ‘로리타 콘셉트’ 논란에 휩싸였으며, 전작 ‘쿠키’ 발매 당시에는 가사 선정성으로 비판받은 바 있습니다. 한 동시통역사는 ‘쿠키는 영미권에서 여성 신체를 의미하는 속어로 사용된다’는 취지로 지적하기도 했죠.

당시 어도어 측은 가사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며 논란에 해명하면서도, “불필요한 의혹을 노린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으며 모두의 의욕을 떨어뜨려 마음만 고단하게 할 뿐”이라고 의혹 제기를 ‘불필요’한 행위라고 일컬어 또 한 번 빈축을 샀습니다.

▲(사진제공=어도어)
▲(사진제공=어도어)

뉴진스 “각자 해석” vs 평론가 “끔찍한 선택”

평론가들의 반응도 엇갈렸습니다. 김영대 대중음악 평론가는 “라이트한 리스너들에게는 보편적인 즐거움을 선사하고, 팬들에게는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이유와 자부심을 재차 확인시키고, 그 팬들조차도 예상치 못한 것들로 놀라움과 통쾌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탁월한 예술이고 음악”이라고 호평했습니다.

반면 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는 “‘오엠지’ 뮤직비디오 제작자는 세상 밖으로 총구를 돌려 시청자와 소비자, 팬덤을 직접 겨누고 있다”며 “마지막 장면은 끔찍한 선택”이라고 비판했죠.

그는 “굳이 플랫폼을 콕 짚어 여기서 나오는 의견들은 모두 ‘정신병’이라 지칭하는 마지막 장면은 전혀 통쾌하지 않다”며 “해당 SNS를 이용하는 K팝 팬들에게 논란을 부르기 위해 만든 영상이고, 그에 대한 피드백에도 ‘응 너는 정신병’, ‘거봐 내 말이 맞았지’라고 자화자찬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짚었습니다.

이처럼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뉴진스 멤버들은 “보시는 분들께 각자 해석을 맡기는 게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뮤직비디오에 대한 의미는 비밀로 남겨두고 싶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물론 ‘악플’처럼 누군가를 비방하고 모욕하는 것은 법으로도 제재될 만큼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해당 장면에 나타난 내용은 선 넘은 비방이나 모욕보다는 불호에 가까운 반응이라 의아함을 자아내죠.

‘오엠지’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신우석 감독은 이달 1일 멜론과의 인터뷰에서 “팬분들이 즐거움을 느끼신다면 저도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해석할 거리를 주고 싶었다. 작품을 깊게 들여다보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연출자 입장에서 상당히 기쁜 일”이라면서도 ‘디토’ 뮤직비디오 공개 후 “다양한 오해와 억측”이 나왔다고 밝혔습니다.

쿠키 영상의 의도는 제쳐두더라도, 특정 방향의 해석만을 수용하고 그 외의 의견은 오해 및 억측, 혹은 악플로 치부하는 듯한 모습이 소속사의 반박 입장, 뮤직비디오의 쿠키 영상, 감독의 인터뷰 등을 통해 누적되고 있어 아쉬움이 나옵니다.

▲뉴진스 ‘OMG’ 뮤직비디오 캡처 (출처=유튜브 채널 ‘HYBE LABELS’)
▲뉴진스 ‘OMG’ 뮤직비디오 캡처 (출처=유튜브 채널 ‘HYBE LABELS’)

비난엔 대응하되, 의견은 수용하길

뉴진스 멤버들은 모두 어린 나이지만 뒤처지지 않는 열정, 뛰어난 실력으로 대중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싱그러운 청춘을 그려내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죠. 구슬땀 흘리며 안무 연습에 매진하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 뉴진스에 맹점이라곤 전무해 보입니다. 적어도 그룹 내부에서는요.

K팝 아이돌이 과거와 비교했을 때 사뭇 다른 영향력을 지니게 됐다는 점에서, 아이돌 본인은 물론이고 이들을 그려내는 방식에도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김도헌 평론가는 “제작자의 손을 떠난 순간 작품은 만인의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창작의 자유는 창작자에게 있지만, 수용의 자유는 향유자에게 있다는 것이죠.

적극적인 소통 대신 의견 제기를 막는 듯한 뉴진스 측, 정확히는 뉴진스를 둘러싼 어른들의 태도는 결국 뉴진스의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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