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당시 우려하던 벤처기업 줄도산 등의 직접적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그렇지 않아도 위축돼 있던 투자심리가 더 움츠러들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0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SVB 파산으로 직접 피해를 입은 국내 기업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 정부가 예금주의 예금 전액을 보증하는 조치를 내리고, SVB에 예금한 국내 은행이나 기업 수가 많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직접 피해는 없더라도 투자 심리를 위축하는 데는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스타트업레시피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유치된 스타트업 투자금은 3409억 1000만 원으로 전년 같은 달 대비 61% 하락했다.
벤처투자시장이 워낙 침체됐던 만큼 투자금 감소를 SVB 파산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투자업계에서는 SVB 파산 이후 글로벌 투자 회사들이 줄지어 어려움을 겪으면서 투자시장이 더 얼어붙었다고 평가했다. SVB 파산이 상반기 투자시장 악화의 시작점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
지난달 10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하고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했다. 세계적인 금융 불안정성의 시작이었다.
같은 달 12일 암호화폐 산업의 주요 은행 중 하나인 시그니처은행이 무너졌고, 불똥은 유럽으로 옮겨갔다. 스위스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크레디트스위스(CS)가 대규모 자금유출을 겪고 있음이 알려지며 주가가 장중 30%가량 폭락하자 UBS는 19일 CS를 32억 달러를 들여 인수했다. 도이치방크 역시 지난 달 24일 주가가 장 중 14% 이상 급락하기도 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SVB 파산과 뒤이은 글로벌 은행 위기들로 직접적인 피해는 없지만 투자심리 위축에는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며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SVB‧크레디트스위스 사태가 일어나면서 ‘시장이 불안한 것 아니냐’, ‘금리가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고 국내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시장조사업체인 피치북과 미국벤처캐피털협회(NVCA)는 지난 7일(현지시각) 발표한 ‘2023년 1분기 프리뷰 리포트’에서 “데이터에는 즉시 나타나지 않지만 SVB 파산으로 예상됐던 벤처캐피탈(VC)에 대한 큰 피해는 대부분 피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시장에 대한 또 다른 불필요한 압박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투자업계에서는 비슷한 사태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는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장벽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김종술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전무는 “SVB는 국내에서 검토하는 벤처대출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비슷하다고 무조건 도입을 주저할 게 아니라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벤처대출은 은행이 담보력이 부족한 벤처‧스타트업에 저리로 융자를 해주는 대신 후속투자 유치 시 대출금과 함께 소액의 지분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융자상품이다. 중기부는 2021년부터 도입을 추진해왔고, 관련 법안도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다만, SVB의 파산으로 벤처투자가 위축되면서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졌는데 금융기관이 벤처대출을 이용하겠냐는 의문이 제기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