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건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신뢰성을 심어주는 일뿐입니다. 가격으로 비교하면 승부를 볼 수 없어서 제품을 잘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인 거죠.”
최근 기자와 만난 한 로봇업계 관계자는 중국과의 가격 경쟁을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세계 시장에서 기술력 하나로 약진하던 ‘메이드 인 코리아’가 중국의 저가 공세로 흔들리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전자 업계 주요 제품들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디스플레이는 대표적 사례다. 중국은 정부 차원의 천문학적 보조금과 저렴한 경상비, 인건비 등을 바탕으로 저가 공세를 펼쳐 한국의 왕좌를 가져갔다.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을 주도했던 국내 기업은 단 17년 만에 1위를 내줬다. "이기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상반기 LCD 사업을 철수했으며, LG디스플레이도 국내 TV용 LCD 패널 생산을 중단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은 로봇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로봇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서빙로봇 시장에서 최소 70% 이상은 중국산 제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LG전자와 KT가 서빙로봇을 만들고 있지만, 점유율이 중국 기업에 크게 뒤처진다. 한국의 유일한 강점인 ‘기술력’에서도 격차가 많이 좁혀진 상황이다.
값싼 중국산 로봇, 디스플레이가 한국을 잠식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이를 보호할 장치가 없었다. 미국은 중국산 로봇에 25% 관세를 부과해 가격 경쟁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고액의 보수로 디스플레이 핵심 인력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동안에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은 없었다.
고무적인 건 디스플레이 산업을 회생하기 위한 정부의 심폐소생술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정부와 민간은 손을 잡고 2027년까지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를 탈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세액 공제 확대, 특화단지 지정, 규제 완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이 아직 로봇에까지는 닿지 않았다. 로봇 산업은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미래 먹거리다. 국내 주요 기업도 로봇을 키우기 위해 관련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노력이 중국의 공세로 물거품이 되지 않으려면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시장이 초기 단계인 만큼, 지금 나서지 않으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될 수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다시금 세계 시장에서 이름을 떨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