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가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이 정한 식사비 한도 완화를 검토하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지만, 정작 해당 법안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 법 감정'과 김영란법 취지 훼손 등이 이유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김영란법 규제 개선 필요성을 언급한 상황에서 권익위가 이같은 우려를 어떻게 돌파할지 주목된다.
1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3월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은 공직자 등이 제공받는 식사비 한도를 기존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올리고, 농수산물 선물가액을 20만 원으로 상향하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김영란법 주무 행정기관인 권익위는 해당 법안에 대해 입법취지 훼손과 일반 국민의 법 감정 등을 이유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6월에 나온 국회 정무위원회 전문위원의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권익위는 정무위에 "음식물 및 농수산물·가공품의 가액범위 상향은 공직자 등의 금품 등 수수를 금지함으로써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려는 청탁금지법의 입법 취지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또한 "내수 진작 효과 등은 청탁금지법 본래의 정책 목적이 아닌 음식물 등 가액 상향에 따라 예상되는 부수적인 효과일 뿐만 아니라 음식물 등 가액 상향과 소비 진작 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검증자료가 없다"며 "가액 상향에 대한 일반 국민의 법 감정 등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권익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권익위가 운영하는 국민 정책참여 플랫폼인 '국민생각함'을 통한 설문조사 결과 음식물 가액 한도(3만 원)에 대해 응답자의 과반(59.7%)이 음식물 가액 상향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가액을 하향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은 10.7%였다.
또한, 권익위가 2021년 10월 발표한 '청탁금지법 시행 효과 분석을 통한 발전방향 모색 연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음식물 가액 3만 원과 농·축·수산물 선물가액 한도 10만 원에 대해 공직유관단체 임직원, 교원 등 모든 집단에서 '적정하다'는 응답이 우세했다. 식사금액 한도 3만 원에 대해 '한도가 너무 낮아 상한액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응답은 언론인(44.0%), 영향 업종(39.5%), 일반 국민(39.3%)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권익위는 김영란법이 정한 식사비 한도 규제 완화를 검토하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상태다. 김홍일 위원장은 16일 외식업자 현장 간담회에서 "김영란법의 음식물 가액 상한이 2003년부터 대략 20년 지나다 보니 물가 상승의 문제도 있었고, 현실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기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과 여러분의 어려움을 해결해줘야 한다는 소명 의식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식사비 한도 상한선에 대해 "사회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일반 국민 법 감정도 고려해야 한다"며 "국민들의 생각과 의식 등을 반영해 신중히 판단해보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직접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의 목소리를 전하며 '김영란법의 음식값, 선물 한도 규제 등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으니 개선해 달라'는 호소가 있다고 언급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16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김영란법 식사비 한도와 관련해 "법의 취지에 국민이 다 동의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됐지만 시간과 여건 등을 비춰봤을 때 현실화할 필요성이 있다"며 "다양한 의견이 항상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의견을 수렴하면서 현실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겠다"고 설명했다.
식사비 한도 조정은 권익위 검토 후 전원위원회 의결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식사 금액 상향과 관련해 여러 의견이 있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