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배권 이전을 초래하는 것이라도 주식회사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전환사채의 저가 발행이 지배권 이전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회사의 이익을 침해하지는 않는다고 본 것이다.
앞서 1심과 2심 법원이 “전환사채 헐값 발행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점을 인정한다”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30억원이 추징했던 판결이 정면으로 뒤집었다.
이어 대법원은 2시30분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 대해서도 동일한 논리에 따라 1ㆍ2심에서 내린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동일 건에 엇갈렸던 ‘판결’
‘에버랜드 사건’의 발단은 지난 1996년 이재용 전무가 에버랜드 CB를 저가에 대량 인수한 뒤 주식으로 교환해 회사 최대주주가 된 것이다.
지난 2000년 법학교수들과 참여연대 등의 고발로 시작된 에버랜드 사건 수사는 2003년 말 검찰이 이 과정을 주도한 허태학, 박노빈 전 에버랜드 사장을 기소하면서 법정에서 다툼을 하게 됐다.
지난해 1심과 2심 재판부는 허태학, 박노빈씨에게 각각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 유죄를 선고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었다.
이와 함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축발된 특검수사에서 이건희 전회장이 에어랜드 경영진과 함께 공범으로 기소됐지만 에버랜드 전 경영진과는 달리 1심과 2심 모두 ‘무죄’ 판결을 받고 대법원에 넘겨졌다.
같은 사건에 대해 하태학, 박노빈씨는 유죄, 이건희 전 회장은 무죄라는 엇갈린 판결에 대해서 대법원이 이날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했다.
◆빨라지는 이재용 전무의 행보
무엇보다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삼성은 경영권 승계 작업의 합법성을 인정받게 됐다. 즉 대법원이 삼성 핵심계열사 간의 순환형 지배구조를 인정한 셈이 돼 에버랜드 최대 주주인 이재용 전무의 위상이 공고화된 것이다.
현재 삼성계열사간 지분구조는 에버랜드가 삼성생명(19.34%)을, 삼성생명이 삼성전자(7.26%)와 삼성카드(27.51%), 삼성물산(4.8%)을, 삼성전자가 삼성카드(36.9%)를, 삼성카드가 에버랜드(25.64%)를 지배하는 핵심 계열사간 순환형 지배구조이다.
자연스럽게 이재용 전무 체제로의 전환이 빠르게 추진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올해 들어 이재용 전무는 미국과 유럽, 대만 러시아 등 해외 사업장을 부지런히 오갔다. 지난 4월에는 삼성전자 이윤우 부회장과 함께 일본 출장을 떠나 닌텐도, 소니, 도시바 등 일본 주요 전자업체의 최고경영자들과 잇달아 면담을 했다.
이어 5월 초에는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과 이틀 일정으로 불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고, 독립국가연합 지역의 매장을 둘러보고 현지 전략을 논의하는 등 해외사업 점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전무의 이 같은 활발한 행보를 대법원 판결 이후를 염두에 두고 본격적인 승계 작업을 위한 기반 다지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법원이 삼성에버랜드 CB발행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이 전무가 편법 경영권 승계 의혹에서 벗어나게 돼 그룹내 활동에 예전보다 더 힘을 실을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