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남 탓’만 하다 표류한 중대재해법

입력 2024-02-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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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민생을 외면했다.” “총선 때 양대노총의 지지를 얻고자 800만 근로자의 생계를 위기에 빠뜨린 결정이다.”

운석열 대통령은 1일 더불어민주당이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확대 유예안을 거부하자 이같이 작심 발언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여당 원내대표가 민주당이 그동안 요구해온 산업안전보건청을 수용했음에도 민주당이 거부한 것은 결국 민생보다 정략적으로 지지층 표심을 선택한 것 아니냐”라며 “83만 영세사업자들의 절박한 호소와 수백만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어떻게 이토록 외면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이튿날 나온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발언도 이와 맥락은 비슷했다. 윤 원내대표는 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총선 때 양대노총 지지를 얻고자 800만 근로자의 생계를 위기에 빠뜨린 결정”이라며 “선거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것으로 운동권 특유의 냉혹한 마키아벨리즘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이 그간 선제 조건으로 요구해 온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수용했음에도 법안 처리를 끝내 거부했다. 민주당이 중처법 확대 적용 유예를 끝내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민생을 책임지는 국민의 공당이 맞는지, 의회 민주주의를 할 생각이 있는지 근본적인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중처법 유예를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해왔는지에 대해선 아쉬움도 있다. ‘진심’을 다해 법안 유예를 위해 야당과 소통을 해왔는지, 확대 시행을 앞두고 준비를 철저히 해왔는지를 돌아보면 ‘글쎄’란 생각이 앞선다.

정부의 대비도 미흡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말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등 중처법 관련 부처와의 합동 브리핑에서 “2년간 50인 미만 기업 83만7000여 개의 절반 수준인 45만 개소에 컨설팅·교육·기술지도 등을 지원했으나, 충분히 준비하도록 하는 데는 부족했다”고 말했다. 중처법이 올해부터 확대 시행되는 것을 몰랐을 리도 없으니 정부의 준비 미흡을 자인한 것이다.

야당이라고 다를까. 야당의 중처법 밀어붙이기가 전적으로 5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의 안전을 위한 결정이었는지 역시 물음표다. 1일 국회 본회의 전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90분간 격론이 오갔다. 중처법 확대 시행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현실론이 부각하며 여당의 유예안을 받는 분위기로 가다가 일부 강성 의원들의 반대 의견에 끝내 개정안 수용 거부로 의견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격론이 오갔다는 것은 그만큼 야당 내에서도 중처법 확대 시행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아울러 이날 의총 후 임오경 원내대변인은 “(찬반이) 팽팽한 가운데 유예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조금 더 높았다. (반대 결정에) 이태원 특별법에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한 부분도 좀 작용했다고 본다”고 설명한 것에 비추면 여당의 비판처럼 야당의 결정은 총선을 앞두고 근로자의 표심을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노림수일 수도 있다. 허송세월한 지난 2년의 유예 기간 여야 정치권의 불협화음과 표 계산에 민생만 파탄 났다.

중소기업계의 개선 노력도 필요하다. 여건이 어렵다는 말로 넘기기에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 발생 건수가 많아 중처법 확대 시행을 요구하는 노동자의 주장에 힘을 싣게 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망자 비중은 내림세에 있으나 절반을 넘는다. 2021년 63.7%, 2022년 60.2%를 기록했으며 작년 3분기 누적 58.2%로 나타났다. 50인 미만 회사에서 10명 중 6명가량의 중대재해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달 27일 중처법 확대 적용 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 재해가 3건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중소기업계는 2월 임시국회에서 유예 법안을 다시 논의하기를 원하지만, 국회와 총선 일정 등을 고려하면 쉽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안전한 근로 환경을 조성, 다치거나 죽는 근로자가 없어야 한다는 절대 명제 아래 정치권과 정부, 중소기업계 등이 다시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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