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알리 지옥’ 만든 이커머스 中風…두 손 놓은 정부

입력 2024-03-06 05:30 수정 2024-03-06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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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생활경제부장
▲석유선 생활경제부장
고백하건대, 시작은 2019년이었다. 중국 해외직구 이커머스 ‘알리익스프레스(알리)’ 첫 경험 이야기다. 드라이버와 우드, 유틸리티 3종 골프클럽 커버가 모두 합쳐 한화로 1만 원이 채 안 됐다. 국내에서 구매하려면 개당 10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 부담스럽던 골린이(골프 초보 어린이)였던 지라, 혹해서 결국 카드결제를 했다. 그런데 배송이 하세월이었다. 스스로 주문한 사실조차 잊을 무렵, 노란색 박스테이프에 칭칭 감겨온 ‘일반우편’ 형태의 비닐 주머니 하나가 덩그러니 집 앞에 놓여있었다. 한 달 전 알리에서 산 바로 그 커버였다. 이 아이는 지금도 나의 골프클럽을 보호하며 제 몫을 다하고 있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알리를 쓰고 있냐고?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알츠하이머를 의심케 할 정도로 잊어버릴 즈음 당도하는 ‘느려 터진’ 배송에 크게 질린 탓이 첫 번째 이유다. 알리가 판매하는 상품 대부분이 일명 ‘짝퉁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게 두 번째 이유다. 그렇다고 명품을 가장한 짝퉁 제품을 산 적이 없지만, 가격에 혹해서 산 제품도 대부분 내구성이 나빠 며칠 만에 쓰레기통에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닌 점도 알리를 꺼리게 된 세 번째 이유다. 중국 이커머스가 판매하는 상품이니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당연한 일인데, 중국산이란게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결국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알리 애플리케이션(앱)을 아이폰에서 아예 지워버렸다.

그러다 올해 들어 알리 앱을 다시 내려받았다. 국내 온라인·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유통업계 취재원들을 만날 때마다 “알리가 너무 위협적”이라고 개탄한 이유를 찾고 싶었다. 앱 스토어 구매 이력에 클라우드 마크가 뜨는 것을 보고, 5년 전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이제는 소비자가 아닌 유통 출입기자의 마음으로 알리를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첫 화면부터 ‘7일 내 무료배송, 천원 마트’ 팝업이 뜨고, 배우 마동석이 귀엽게 손 꽃받침을 하면서 유혹의 눈웃음을 던졌다. 이번에도 골프용품이 눈에 들어왔다. 국내에서 개당 5000원이 넘는 높이조절 특수 골프티 4개 1세트가 겨우 6300원이다. 4분 1 가격에 또다시 마음이 혹해진다. 게다가 이젠 배송을 한 달이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7일 내 무료배송도 모자라, 지연 배송될 경우 1300원 쿠폰도 준단다. 하마터면 또 카드결제를 누를 뻔했다.

이처럼 알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한국 소비자들이 계속 늘고 있다. 이제 해외직구는 미국이 아닌 중국으로 사실상 옮겨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4분기 중국 해외직구 구매액이 1조 원을 돌파하면서 미국을 제친 것이다. 통계청의 '2023년 4분기 온라인 해외 직접 판매 및 구매 동향'에 따르면, 작년 4분기 해외직구 구매액은 1조 9639억 원으로 전년도 4분기 대비 46.1% 증가했다. 반면 미국은 같은 기간 해외직구 구매액이 4628억 원에서 4645억 원으로 0.4% 증가하는 데 그치며 중국에 밀렸다. 연간 기준으로 봐도, 해외직구에서 중국의 강세는 두드러졌다. 2023년 온라인 해외직구 구매액은 6조7567억 원으로 전년 대비 26.9%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미국이 2022년 대비 7.3% 감소한 1조8574억 원을 기록했지만, 중국은 121.2% 증가한 3조2873억 원을 기록했다. 품목별로는 농·축·수산물이 19.8% 줄었지만, 의류와 패션 관련 상품은 43.5% 증가했고, 생활·자동차용품(35.9%)과 스포츠·레저용품(65.5%) 해외직구도 전년 대비 늘었다.

고물가에 지친 국내 소비자들이 ‘초저가 소비’를 유도하는 알리의 거센 유혹에 기꺼이 응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싼 게 비지떡’이라는 불안감도 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 부담 없이 구매한다는 소비자도 많다. 한번 싼 가격에 익숙해지니, 국내 대형마트와 이커머스에서 파는 물건이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알리를 한번 쓰면 계속 쓰게 된다는 뜻에서 ‘알리 지옥’이라는 유행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중국 이커머스의 시장 침투는 해외직구의 원조국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알리와 비슷한 초저가 쇼핑몰 테무와 쉬인이 약진하고 있다. 특히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테무의 모회사 핀둬둬의 시가총액은 작년 12월 기준 1958억 달러(약 254조8700억 원)로, 오랜 기간 시총 1위를 유지한 알리바바(1905억 달러)를 앞섰다. 테무는 광고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전미 프로풋볼(NFL) 결승전, 즉 슈퍼볼 광고에도 등장했다. 작년 2월에 이어 올해 결승전에서도 1초당 650만 달러(약 85억5000만 원)에 이르는 가장 비싼 광고판을 차지, “억만장자처럼 쇼핑하라”고 홍보했다. 테무는 슈퍼볼 광고 직후 미국 앱 다운로드 순위 2위를 차지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 고객은 하루 평균 18분 테무를 이용했다. 아마존 10분, 알리 11분보다 길다. 블룸버그는 “미국 시장에 진출한 지 1년여 만에 테무가 아마존, 월마트와 경쟁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미국 월마트의 위기감처럼 국내 유통가도 알리 등 중국 쇼핑몰의 위협에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한 유통업계 임원은 “몇 년간 어렵게 토종 이커머스를 키워놨는데, 1년여 만에 모두 알리에 잡아먹힐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업계의 위기감이 고조하고 있지만, 중국 이커머스를 견제할 방책이 없다는 게 난제다. 우리 정부는 알리가 전자상거래법·표시광고법 대상이 아니고, 경고 조치나 과징금을 부과해도 실효성이 없다며 사실상 두 손을 놓고 있다. 짝퉁 단속은 그나마 관세청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플랫폼에 입점해 사고파는 해외업체의 불법 행위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이런 와중에 미국 의회는 테무에 대해 ‘위구르 강제 노동 방지법(UFLPA)’을 위반했다며 수입 금지를 추진하고 있다. 미 행정부도 저가 제품의 과도한 침투에 맞서 800달러 이하 제품에 대한 ‘무관세 혜택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강제 노동 등 인권문제까지 들고 나선 미국을 보면서, 우리 정부의 역할론이 궁금해진다. 지식재산권 침해, 개인정보 유출 등 중국 이커머스에 대한 의심은 계속되고 있다.

중국 이커머스의 광풍이 불어올 동안 체질개선을 못 한 국내 유통기업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다만 ‘기울어진 운동장’은 평평하게 만들어, 국내와 해외 기업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불법에는 단속과 감독을 강화하고 법과 규정 등을 정비하는 일, 과거 그 어느 정부 때보다 ‘법과 원칙’ ‘자유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에 부디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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