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 장애인 울리는 ‘초미세편견’

입력 2024-03-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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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2015년 초등학생이던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는 영상을 찍은 게 내 활동의 시초였다. 제목이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였다. 교통약자들이 지하철에서 겪는 여러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지하철교통약자환승지도 제작비의 씨앗 자금이 된 크라우드펀딩 목적이었다.

영상에선 휠체어 탄 아이와 함께 나들이를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며 겪는 여러 에피소드를 보여줬다. 당시 엘리베이터가 한 대도 없던 상일동역에서 내가 아이를 안고 지하철 역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 승강장과 지하철 열차 사이에 아이 휠체어 바퀴가 끼어 일촉즉발의 위험했던 상황, 사람들이 가득 탄 엘리베이터에서 양보해 주는 사람이 없어 휠체어를 탄 아이가 오래 기다려야 했던 상황 등이 영상에 담겼다.

영상엔 음악이 깔려 있지 않다. 당시 영상 제작을 맡은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영상에 음악 안 깔려고 해. 음악 때문에 어떤 한 감정으로 치우치는 것 같아.” 후배의 판단이 맞았다. 영상에 약간 잔잔한 단조 음악을 깔기만 해도 나와 딸의 모습이 처량하게 보였다. 우리는 그저 나들이에 나선 것이었으니 그런 분위기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는 불쌍하지 않음에도 음악 하나로 인해 불쌍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어떤 콘텐츠의 슬로건, 음악, 영상 스타일 등이 사람들의 속에 있던 편견을 끌어내고 자극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휠체어를 탄 딸에게 가장 난처한 일은 노골적인 차별은 아닌데 은근한 편견이 묻어 있는 말이나 행동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예를 들어 동행인과 함께 음식점이나 카페에 가면 동행인에게 ‘무얼 주문하겠냐’며 물어본다든지, 공연장 같은 곳에 가면 ‘보호자는 어디 있느냐?’라고 묻는다든지(병원에 환자로 간 것이 아닌 한 장애인과 함께 하는 사람을 ‘보호자’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어쩌다 다쳤느냐”며 안쓰럽게 물어보는 질문 같은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분명히 칭찬 같은 말에 어떻게 대응할지 난감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장애가 있는데 참 밝아요”라는 말이라든지, 장애인과 함께 있는 친구에게 “정말 착하네요”라고 말한다든지, 장애인과 결혼한 배우자에게 “(그런 결혼을 하시다니) 천사네요”라고 말하는 것이 그렇다. 이런 종류의 언사들을 나는 ‘초미세편견’이라고 부른다. 머릿속에 있던 편견이 어느새 그런 말로 표현되는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이게 편견인지 잘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초미세편견은 누구나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스스로도 딸과 함께 생활하면서 내가 과거에 했던 많은 발언이나 행동이 실은 차별적일 수 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일상 생활에서 상대방에게 초미세편견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당사자가 즉각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편견에 소수자들이 즉시 대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편견이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기업들의 장애 관련 사회공헌 보도자료나 캠페인, 프로모션이 가장 많이 나오는 때이기도 하다. 행사 기획-홍보 문구부터 ‘나도 모르는 초미세편견’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꼼꼼히 살피는 게 중요하다. 쉬운 예부터 들어보자. 이런 프로모션에 흔히 붙는 수식어인 ‘착한’이라는 말부터 최대한 안 쓰면 어떨까. 사실 장애인과 살아가고 소수자와 함께하는 게 ‘당연함’을 전제로 한다면, 행동에 나서는 소비자에게 ‘착하다’는 말을 굳이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업이 사회공헌을 하는 이유는 기업의 사회시민적 역할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공헌을 통해 해당 기업의 착함과 선함을 부각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공헌, CSR 행사에서 주인공은 기업 자체가 아니라 소수자들이 겪는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을 함께 타파하자는 의미 전달이 행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잘 모를 수도 있으니 물어보고 적극 고쳐보자’는 태도다. 나도 그랬었다. 행사를 기획하기 전 최대한 주변의 당사자(장애인의 날이라면 장애 당사자)에게 의견을 물어보자. 혹시라도 문구에 약간의 편견이 들어갔다는 지적을 받으면 다음부터 고치면 된다. 그런 시행착오가 결국 기업시민으로서의 기업문화를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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