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정보화 이끈 디지털 법정‧전자 소송 선구자
“법무‧행정사 업무 가장 먼저 대체
단순사건 수임 변호사 수입 줄 것”
“챗봇 무료지만 검색내용 쌓이면 그게 빅데이터”
“그걸 분석하면 법률이슈 파악…타깃 영업 도움”
“‘톱 10’ 로펌 공개만 않았을 뿐 모두 준비할 듯”
거센 여름비가 쏟아지던 지난달 초,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유한) 동인 대회의실에 변호사 50여 명이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찼다. 강민구(사법연수원 14기) 법무법인 도울 대표 변호사의 인공지능(AI) 초청 강연이 있던 날이다.
36년간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거쳐 창원·부산지법 법원장을 지내며 법조계에서 ‘정보통신(IT)·사법정보화 전문 판사’로 불릴 만큼 정평이 나 있던 그의 강의는 남달랐다. 챗 GPT 4.0 앱을 켠 그는 스마트폰 음성인식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1초 만에 ‘대여금 변제 촉구’라는 제목의 내용증명서가 완성됐고, 상환을 촉구하는 문장과 계좌 정보 등 상세 내용이 스마트폰 화면에 빠짐없이 출력됐다. 경찰에 접수할 학교폭력 고소장은 물론이고 법원에 제출한 항소·상고 이유서까지 삽시간에 완성되는 모습을 지켜보던 변호사들 사이에서 “아” 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변호사의 지식·노동·시간을 필요로 하던 수많은 법률 업무가 AI 기술로 손쉽게 대체 가능해진 것이다.
6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도울 사무실에서 다시 마주한 강 대표 변호사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감탄이자 앞으로 닥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대법원 종합 법률정보 시스템 개발, 전자소송 제도 도입 등 ‘법원 정보화’ 핵심을 담당했던 그는 올해 1월을 끝으로 정년 퇴임했지만, 송무 사건 처리 외에도 후배 법관과 변호사를 상대로 새로운 AI 실무를 강연하느라 여념이 없다.
강연 끝에는 늘 경각심을 심어주는 말을 덧붙인다. “지금 여러분 밥그릇 빼앗을 기술 보여주는 겁니다”, “AI를 잘 쓰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대체한다는 걸 명확하게 인식해야 됩니다” 인터뷰에서도 그는 이 대목을 강조했다.
그간 일반인들이 ‘방법을 몰라서’ 접근하지 못했던 법률 서비스 시장 상황이 빠르게 뒤바뀌고 있다는 말이다.
강 대표 변호사는 대형 로펌이 앞다퉈 AI 플랫폼을 출시하는 것도 이런 상황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게임의 룰을 다시 써야 되는 상황이다. 유명 로펌들은 당분간 신입 변호사를 적게 뽑는 대신 일반인 대상 무료 AI 챗봇을 운영하면서 판례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새로운 사건을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가 올 3월 일반인 대상으로 판례를 제공하는 ‘AI 대륙아주’ 플랫폼을 선보인 것을 비롯해 주요 로펌들도 AI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강 대표 변호사는 “챗봇 자체는 무료지만 검색 내용이 실시간으로 자기들 서버에 쌓이기 시작하면 그게 빅데이터가 된다”는 점이 주요하다고 했다.
“그걸 분석하면 현재 대한민국 사회가 관심을 둔 법률 이슈를 파악하게 되고 타깃 영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소위 ‘톱 10’으로 손꼽히는 로펌들은 아직 공개하지만 않았을 뿐 모두 비슷한 종류의 서비스를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도 귀띔했다.
이런 흐름이 신입 변호사나 소규모 로펌에 위기인 것만은 아니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과거 대형 로펌이 소속 변호사 100여 명의 노동력을 ‘갈아서’ 수행해냈던 업무를 이제는 AI를 활용하는 개인 변호사들도 동일하게 감당할 수 있게 된 까닭이다.
업무 효율성이 극도로 높아질 수 있는 상황에서 ‘인간 변호사’에게 필요한 건, 궁극적으론 특정 분야에 대한 고도의 전문성이 될 거라는 얘기다.
강 대표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이미 연방·주법원까지 리걸테크 기업들의 성과를 활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웨스트로, 렉시스의 AI 서비스를 많이들 활용한다”며 “늦고 빠르고만 있을 뿐 AI 기술을 활용한 업무 패턴 변화는 어차피 언젠가는 다 겪게 된다. 결국 그 변화에 빠르게 올라타는 변호사만이 생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법조팀 = 박꽃 기자 pgot@‧박일경 기자 ekpark@‧김이현 기자 spes@·전아현 기자 ca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