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기관 부채 인식…건전성 관리 중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1년 정부의 무분별한 정책사업 확대와 암묵적인 지급보증이 공기업 부실을 악화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2020년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48.7%로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공공기관 부채는 국제통화기금(IMF)의 2017년 추산 기준으로 GDP의 23.5%에 달했다. OECD 회원국 33개국 중 1위였다. 특히 공공부문 전체의 부채가 극단적으로 많기로 유명한 일본(17.2%)과도 격차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도 이같은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며 취임 초부터 공공기관의 ‘재무구조’ 개선을 목표로 고강도 혁신을 외쳤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재무구조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모습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0년 541조2000억 원을 기록했던 공공기관 부채규모는 2021년 583조 원에서 2022년 670조9000억 원으로 급격하게 늘었으며 지난해 708조9000억 원까지 불어났다.
주목할만한 점은 재무위험기관으로 꼽혀왔던 에너지 관련 공공기관 뿐 아니라 비교적 탄탄하게 운영돼왔던 금융 공공기관의 부채규모가 최근 빠르게 확대됐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19 위기 대응을 위한 재정정책의 활용으로, 정부가 정책금융 공급 지원을 늘린 데 따른 것이다.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분석 자료와 본지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와 국회 예산정책처를 통해 전수 조사한 결과 국책은행(KDB산업·IBK기업·한국수출입은행)을 제외한 9개 금융 공공기관(기술보증기금ㆍ서민금융진흥원ㆍ신용보증기금ㆍ신용보증재단중앙회ㆍ예금보험공사ㆍ한국무역보험공사ㆍ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ㆍ한국주택금융공사(HF)ㆍ한국투자공사(KIC))의 지난해 부채 총액은 211조4784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181조9024억 원) 대비 16.2%(29조5760억 원) 늘어난 규모다.
절대적인 부채 규모가 가장 큰 곳은 HF로 지난해 말 기준 184조4156억 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 동기(157조4695억 원)보다 17.11% 증가한 것이다. 정책금융 상품 확대와 확장적 보증 기조 유지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HF는 지난해 특례보금자리론 신설했으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연착륙을 위해 보증 공급도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40조 원에 가까운 주택저당채권(MBS)을 발행했고, 재무 부담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HF 관계자는 “부채잔액이 누적으로 잡히면서 규모가 상대적으로 커 보이나 올해 들어서는 보증 공급이 줄어들고 상환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캠코의 부채도 급증했다. 2021년 4조7534억 원이었던 캠코의 부채총액은 2022년 5조8470억 원에서 지난해 7조7342억 원으로 불었다. 금융시장 안정화 지원을 위해 새마을금고 부실채권을 대규모 인수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정책금융을 통해 서민 자금난 해소에 앞장서고 있는 서금원의 경우 부채 증가폭이 가장 컸다. 2021년 2조9443억 원의 부채를 짊어졌던 서금원은 이듬해에는 3조4662억 원(17.7%)늘었고 지난해엔 28.9% 증가한 4조4705억 원까지 확대됐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만 벌써 4조1937억 원으로 전년 전체 규모에 육박했다.
이 외에도 기보(1307억 원), 무보(7096억 원), KIC(130억 원) 등의 부채규모가 전년보다 모두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민간이 커버하지 못하는 금융 사각지대에 정책금융를 공급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정부의 직접 부채가 아닌 만큼 남발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의 성격에 따라 발생하는 부채 성격을 구분해야 한다”면서 “정책금융기관이 제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재무건전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