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경제도 이젠 정치를 나무라야 한다

입력 2024-09-18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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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종속된 경제 제목소리 못내
수평 관계로 바꾸면 선순환 기대돼
극한 정치대립에 경제 역할 커져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민주당 소속의 캐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성소수자 학생 관련 법(AB1955)을 시행하자 자신의 기업인 스페이스X와 X(옛 트위터)의 본사를 텍사스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앞서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공화당의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공개 선언하고 거액의 정치자금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지지에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자였던 테크 업계 거물들도 여럿 있다. 이들은 민주당이 장기 집권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높은 세율과 민주당 행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을 대놓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블룸버그의 창업자인 마이클 블룸버그를 비롯한 100여 명의 기업인들은 “친기업, 친미국적인 꿈, 친기술”에 공감한다며 민주당 해리스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웹사이트를 통한 공개 선언뿐만 아니라 해리스 후보를 위한 정치자금 모금에도 나섰다. 뒤늦게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해리스 후보가 정치자금 모금에서 역전에 성공한 것은 기업인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미국의 기업인들은 특정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를 당연시한다. 몸 사리기도 없고 정치보복을 당할 염려도 없다. 그만큼 미국의 정치문화가 성숙됐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기업인들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동체 발전을 위한 책무로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지지의 이유를 소상히 밝힌다. 미국의 선거가 인신공격보다 세금, 낙태, 고용, 투자 등 정책 중심으로 치러지는 데는 기업인들의 지지 여부가 불러온 바람직한 영향력으로도 분석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기업인의 정치적 발언은 큰 역풍을 가져왔다. 심지어는 기업을 파산시키기도 했기 때문에 정치는 기업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건희 회장의 “정치 4류, 기업 2류”라는 베이징 발언. 이 때문에 삼성그룹은 세무조사로 탈탈 털리고 회장은 귀국도 못 하고 몇 달을 해외에서 떠돌아야 했다. 정치자금을 뜯기다 못 한 정주영 현대 회장이 차라리 그 돈으로 직접 정치를 하겠다며 나섰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자신도 회사도 큰 상처를 입었다.

최종현 SK 회장은 정부의 업종 전문화, 소유분산 정책을 시장경제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했다가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려 직접 사과를 했다.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에게 호출된 SK그룹의 사장은 탁자 머리에 놓여 있는 SK그룹의 은행 대출 현황 자료를 봤다고 한다. 의도적이었든 아니었든 제2의 국제그룹이 연상되어 모골이 송연했다고 전해 들었다.그만큼 정치는 기업에 두려운 존재였고 어느 기업인도 정권의 정체성을 가지고 대들지는 못했다. 그러니 온 국민이 독재에 저항할 때도 기업인은 꿀 먹은 벙어리였고 광우병 같은 괴담을 정치권이 퍼뜨리는데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정치와 경제의 위상이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헌법에 명시된 ‘경제민주화’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전과자가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다고 하면 여기에도 경제의 의견이 표출되어야 한다. 교육도 경제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외교안보도 마찬가지고 사회복지도 직접적으로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인이 직접 정치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만큼은 분석해 국민들의 제대로 된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미국의 기업인들이 대통령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를 선언하는 큰 배경이고 덩달아 미국의 정치문화도 성숙해 졌다. 제대로 된 정치의 도움을 경제도 받기 때문에 경제와 정치의 선순환 효과가 나라 전체에 퍼진다.

2022년 미국의 ‘US 뉴스앤드월드리포트’는 국력(Power) 평가 조사자료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매년 글로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기업 BAV 그룹과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이 전 세계 85개국을 대상으로 해오고 있는데 한국은 종합점수 64.7점으로 세계 국력 순위 6위를 차지했다. 그중에 경제적 영향력은 79.8점, 정치적 영향력은 48.6점으로 경제와 정치의 성적이 종합점수를 기준으로 극명하게 갈린다.

만약 한국에서 경제의 정치 관여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뤄진다면 결과적으로 한국의 종합 국력도 6위보다 더 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든다. 정치도 경제의 역할을 인정하고 배울 건 배워야 한다. 정치 논리의 득세, 공동체가 무너질 듯한 정치 대립을 보면서 새삼 경제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경제도 이젠 정치에 대해 할 말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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