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등 해외 상업용 부동산을 둘러싼 경기회복이 늦어지면서 이들 자산에 대체투자에 나선 금융사들의 손실도 커지고 있다.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국내 금융사가 투자한 해외부동산 단일 사업장(34조5000억 원) 중 2조5000억 원(7.27%) 규모에서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했다. EOD 규모는 지난해 9월 말 2조3100억 원, 지난해 12월 말 2조4100억 원을 기록하며 부실 규모를 지속해서 키우고 있다. 해외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임차 수요가 급감하면서 공실률은 치솟고, 부동산 가격은 급락한 영향이 크다.
해외 부동산 투자의 위험이 커졌지만, 투자자들은 불나방 처럼 몰려들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기준 해외부동산 펀드(공·사모 합산) 설정액 규모는 80조1280억 원으로, 처음으로 80조 원을 돌파했다. 26일 기준 80조2837억 원울 기록 중이다. 49조7860억 원이던 5년 전(2019년)에 비해 61% 넘게 늘어난 규모다. 해외부동산 펀드 설정액은 2022년 말 71조8872억 원, 2023년 말 77조2768억 원을 기록했다.
펀드의 손실 규모는 가시화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해외부동산 펀드 256개 중 최근 1년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 중인 펀드는 36개(14.06%)다. 수익률이 71% 넘게 손실이 난 상태인 펀드도 있다.
국가 기관 또한 손실을 피하지 못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주택도시기금 여유자금 운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EOD가 발생한 투자자산은 1건(1800억 원 규모)로 집계됐다.
이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있는 스테이트 스트리트 빌딩에 투자한 기금 여유자금이나. 해당 빌딩의 건물주가 자금난으로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면서 원금 손실 가능성이 불거졌고, 5개월 뒤 국토부와 자금을 위탁받은 미래에셋운용이 원금 전액 손실을 확정했다.
이처럼 해외 부동산 시장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일단 손실 시점을 미루기 위해 만기를 연장하는 펀드도 다수다. 당장 내년에 만기 예정이던 5개 펀드 중 3개 펀드가 만기 연장을 했거나 추진 중이다. 이중 ‘미래에셋맵스미국부동산투자신탁11호’만 해도 4일 수익자 총회를 열고 내년 1월인 펀드 만기를 2030년 1월까지 미루는 안건을 추진한다.
시장에서는 펀드 만기는 손실 시점을 미룰 뿐 시한폭탄을 들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이하)을 단행했지만, 팬데믹 이후 공실률 랠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당분간 해외 부동산 회복세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미국 오피스 공실률은 20.1%로, 통계가 집계된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