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전쟁 등 공급망 위기 산적...유연한 수출 구조 변화 필요
지난해 한국 경제성장의 8할 이상은 수출이 기여했다. 수출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성장 엔진인 셈이다. 하지만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는 글로벌 공급망 혼란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급격한 기후 변화 등 교역 여건 악화에 대비해 외부 환경적 요인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비율은 92.9%로 집계됐다. 100%를 돌파했던 전년(100.6%)보다는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우리 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다. 특히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1.17%포인트(p)로 경제성장률(1.36%)의 86.1%에 달했다.
이 같은 수치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는 것을 단명하게 보여주지만 외부 환경 변화에 그만큼 민감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대외 충격이 닥치면 경제 근간이 급격히 흔들릴 가능성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 글로벌 공급망에 간과할 수 없는 위기가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기후위기다. 잦은 홍수와 가뭄은 당장 식량 생산량을 위협하고 ‘물길’에 장애물까지 놓는다. 세계 물동량 5% 안팎을 차지하는 파나마 운하는 지난해와 올해 초 전례 없는 가뭄으로 선박 이동에 지장이 생겨 선박 통행량을 제한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최대 항로인 수에즈 운하는 이스라엘과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으로 정체됐다.
한국은 지리적 특성상 수출입 화물 운송 99.7%가 해상을 통해 처리된다. 리드타임(발주부터 납품까지의 소요 시간)과 품질 문제에 예민한 반도체, 컴퓨터, 무선통신기기 등 IT 제품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품목이 바닷길을 이용해 나간다. 특히 자동차, 석유제품은 부피가 크고 중량이 무거워 항공 운송 전환도 어렵다.
물동량, 운송 지연 등에 따른 비용 부담 증가는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 15일 관세청이 발표한 ‘9월 수출입 운송비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으로 향하는 해상 수출 컨테이너의 2TEU(40피트짜리 표준 컨테이너 1대)당 운송 비용은 평균 86만2000원으로 전월보다 17.6% 올랐다. 중국행 해상 수출 운송비는 2월부터 8개월째 상승세다. 그나마 중국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지난달 해상 수출 운송비 상승세가 멈췄다.
그러나 지난해와 비교하면 운송 비용은 최대 2.5배로 급등했다. 유럽연합(EU)과 베트남으로 운송비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각각 154.2%, 148.5% 상승했고, 미국 동부(76.6%)·서부(72.0%), 중국(53.6%) 등도 크게 올랐다.
고운임이 수출 가격에 전가된다면 우리 제품이 글로벌 시장 내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저가 경쟁력을 무기로 내세우는 중국은 후티 공습 피해가 제한적인 데다가 내륙 철도(TCR) 등 바닷길을 대체할 운송로도 확보해놨다. 지난해 중국의 EU 수입시장 점유율(7.91%)만 봐도 한국(1.13%)의 7배에 달해,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괜한 일은 아니다.
안혜영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중국이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는 품목 중 다수가 국내 수출 주력품목과 중복돼 한국은 주요국 중 가장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특히 주요 경쟁 품목인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조선, 철강 등의 중국 수출단가가 한국산의 30~70% 수준에 불과해 국내 수출 경쟁력 하락이 우려된다”고 짚었다.
실제 최근 저가 공세를 앞세운 중국 수출이 본격화하자 한중 경쟁 품목에서 중국 수출 품목별 글로벌 점유율이 대폭 상승하기도 했다. 중국의 철강 수출 점유율은 2021년 4.4%에서 지난해 3월 31.7%로, 같은 기간 자동차는 3.4%에서 9.1%로, 조선은 26.6%에서 46.6%로 껑충 뛰었다.
수출길만 타격을 받는 게 아니다. 한국은 원유, 석탄 등 에너지나 제철산업 원료가 되는 철광석 등 원자재 100%를 해상으로 운송 받는데, 그 중 70%가량을 중동 지역에서 수입한다. 식량자원도 부족해 곡물 등 전체 식량 소비의 약 7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의 또 다른 ‘수출 효자’ 자동차(완성차) 시장도 홍해 사태 등 공급망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동차나 가전, 배터리는 국내에서 부품을 조달, 동유럽에서 조립하고 유럽 시장에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홍해발 물류 대란으로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최악의 경우 생산 공장이 멈출 수도 있다. 반도체 역시 생산에 필수적인 실리콘, 희토류 등 원자재 공급이 지연되면 생산 능력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바닷길을 단순히 물건을 내보내기만 하는 운송로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한정민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한국은 수출 주도형 성장 국가로, 앞으로 수출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구조적 요인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세계 교역 구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한 수출 구조 변화가 필요하고 대외적으론 불확실한 교역환경에서 수출 확대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수반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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