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당구장에 갔던 적이 있다. 함께 당구를 치던 아버지 동료들의 직전 직업은 경찰서장, 은행 지점장이었다. 경력으로 치면 시설관리직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가장 뒤처졌다. 아파트 경비원은 청년층이 꺼리는 일자리 중 하나다. 아파트 경비원의 근무체계는 12시간 또는 24시간 2교대제가 일반적이다. 남들 놀거나 잘 때 일하는 탓에 삶의 질이 낮다. 그렇다고 다른 일보다 월급이 많지도 않다. 이런 일자리에 상대적으로 ‘고스펙’ 고령층이 몰린다는 건 고령층 취업 여건이 그만큼 열악하단 걸 의미한다.
편의점 계산원, 주유소 주유원, 아파트 경비원 등에 교육수준과 직전 소득수준이 높은 고령층이 몰리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0년대 말부터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취업시장에 고령층 구직자가 쏟아졌다. 그런데, 민간 취업시장에서 고령층이 일할 일자리는 마땅치 않다. 아파트 경비원 등 그나마 계약기간 고용안정과 최저임금이 보장되는 제도권 일자리에서 스펙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상대적으로 교육수준과 직전 소득수준이 낮은 고령층은 일용직이나 소득이 불규칙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비제도권 일자리로 밀려났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중심으로 계속고용 방식을 논의 중이다. 그런데, 노동계는 여전히 경직적인 정년 연장만 고수한다. 정년 연장의 수혜자가 전체 취업자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정년 연장은 주된 직장에서 은퇴를 5년 미루는 것 외에 효과가 없다. 은퇴 후 편의점 계산원, 주유소 주유원, 아파트 경비원 등으로 취업하거나, 경쟁에서 밀리면 비제도권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이를 고려할 때 계속고용 논의에서 정년 연장보다 중요한 건 고령층 취업환경, 근로조건 개선이다. 경직적인 정년 연장은 고령층 고용을 ‘인건비 부담’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는 임금 등 근로조건을 낮추더라도 정년 후 하던 일을 계속하길 바라는 고령층의 계속고용에 장애물이다. 수요를 고려해 기업들에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 차원에선 민간의 고령층 적합 일자리뿐 아니라 생산성이 높은 다양한 형태의 노인 일자리를 개발해야 한다.
계속고용제도 도입은 고령층의 고용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지 대기업·공공기관 정규직의 은퇴를 미루고 연금액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논의도 이를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