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65세 정년연장’은 포퓰리즘이다

입력 2024-11-1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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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설 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ㆍ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

일본의 성공적 고용모델 외면하고
노동계 눈치에 정치권 입법 서둘러
정부, 사회적 대화 앞서 국회 설득을

일본에서 시행 중인 60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계속고용방식은 성공한 제도로 평가받는다. 60세 퇴직자를 65세까지 고용토록 의무화하면서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늦춰지는 연금수급연령으로 인한 소득공백을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 생산성, 연금수령 등을 감안한 고령자 계속고용제도가 퇴직자의 고용연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일본의 법정 정년은 1998년 60세로 결정된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 퇴직자들은 65세까지 고용을 보장받는다. 일본 정부가 2000년부터 기업에 도입을 권유한 계속고용제도를 2013년부터 전면 의무화한 덕분이다. 이 제도를 통해 기업들은 60세 퇴직자에 대해 정년연장, 퇴직후 재고용, 정년폐지 중 하나를 선택해 65세까지 고용해야 한다. 고용형태는 개별기업의 노사 자율에 맡긴다.

기업들은 재고용 방식을 가장 선호한다.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기업들의 계속고용방식은 인건비 부담이 덜한 퇴직 후 재고용이 69.2%로 가장 많고 정년연장 26.9%, 정년폐지 3.9% 순이다. 재고용할 경우 임금은 대체로 퇴직 전의 60∼80% 수준에서 결정된다. 계속고용이 성공적으로 정착하자 2021년에는 ‘70세까지 고용 노력’ 의무도 부과했다. 일본은 고령자에 대한 계속고용 의무화 조치에 힘입어 60∼64세 취업률은 고용의무화가 시작된 2006년 52.6%에서 지난해 73.0%로 상승했다. 법정 정년을 60세로 붙잡아두었지만 임금 및 고용유연성이 가능한 계속고용제도가 고령자의 고용 연장을 이끈 셈이다.

일본 정부는 민간기업의 계속고용제도가 성공을 거두자 60세인 공무원 정년을 2023년부터 매 2년 단위로 1년씩 늘려 2031년 65세까지 연장키로 했다. 민간기업의 계속 고용 의무화시기에 맞춰 공무원의 정년을 연장하려 했으나 지나친 특혜라는 비판이 제기돼 10년 정도 늦춘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60세 이후의 공무원 급여는 당분간 퇴직 전 급여의 70%만 지급토록 했고 60세 이후에는 국장, 과장 같은 보직은 맡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조직의 인사관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했다는 점이다.

고령자 고용연장 문제가 핫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일본식 계속고용 모델은 당장 벤치마킹해야 할 모범답안이다. 그런데 입법 주도권을 쥐고 있는 정치권은 일본식 모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고령자 계속고용에 따른 긍정적,부정적 효과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기도 전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법정 정년연장을 위한 입법 경쟁을 벌이고 있다. 법정 정년연장은 기업의 비용부담 증가와 생산성 하락, 인력운영의 어려움, 노동시장 양극화 등 많은 부작용이 뒤따를 우려가 크지만 정치권은 노동계가 주장하는 정년 65세 연장만을 고집하고 있다. 일본식 계속고용 모델과 관련한 입법에는 여야 모두 관심이 없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발의된 정년연장 관련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고령자고용법)’은 3건이다. 모두 야당 의원이 발의한 것으로 60세인 법정 정년을 65세로 높이자는 게 골자다. 국민의힘도 계속고용이 아닌 정년연장과 관련한 법안을 내년 초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60세인 정년을 단계적으로 연장해 2034년 65세까지 올리자는 내용이다. 기업과 고령자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퇴직 후 재고용을 포함한 계속고용방식은 여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시행된 정년 60세로 인해 지금까지 임금피크제 무효소송 등 후유증을 앓는 기업들이 많다.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보완장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시행한 탓이다. 정년 65세 연장은 더 많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무엇보다 정년 60세를 지키는 기업도 많지 않은 상태에서 5년을 더 연장하기 때문이다. 고용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정년제를 운영하는 사업장은 22%로 5곳 중 1곳에 불과하다. 여기에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는 근로자는 전체의 10%에도 못 미친다.

노동조합의 집단이기주의가 극심하고 임금 및 고용유연성이 경직된 나라에서 정년을 연장하는 것은 대기업, 공기업 등 부자 노동자들에게만 혜택이 쏠려 노동시장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고령자 계속고용은 개별 기업의 여건에 따라 노사가 자율로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치권이 계속고용보다 정년 65세를 입법화하려는 것은 기업과 사회 여건을 무시하고 노동권력의 눈치만 살핀 포퓰리즘 행태에 다름아니다. 정부의 대응도 한가하다는 느낌이다. 정치권에 대한 적극적인 설득 노력 없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풀겠다는 것은 안이한 책임회피로 비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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