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가 의사와 약사에게 합법적으로 제공한 의약품·의료기기의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에 대한 첫 공개를 앞두고 제약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는 의약품·의료기기의 합법적 경제적 이익에 대한 거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출 내역을 공개하도록 한 약사법 시행에 따른 조치다.
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2021년 7월 20일 약사법과 의료기기법 개정으로 2023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작성된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가 이달 공개된다. 국민들은 공개된 지출보고서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제약사 등 공급자와 이익을 받은 요양기관이나 학술대회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제약사와 판촉영업자(CSO) 등은 견본품 제공, 학술대회 지원, 임상시험 지원, 제품설명회, 구매 전 성능 확인을 위한 사용, 대금결제 조건에 따른 비용 할인 등 의사와 약사에게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경제적 이익을 작성해 보건복지부에 보고하고 보관해야 한다.
약사법 상 제약회사나 CSO 등 의약품 공급자는 의사나 약사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견본품 제공 등이 허용된다.
이번 지출보고서 공개 제도는 당국에서 허용하는 경제적 이익을 국민에 알리고 투명하게 관리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특히 불법 영역에 있는 ‘리베이트’와는 성격 자체가 다른 것으로, 법에서 허용되는 부분을 양성화해 불법적인 리베이트를 잡아내고 근절하기 위한 기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2023년 복지부가 공개한 ‘2022년 의약품·의료기기 공급자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약사가 의사·약사에게 제공한 의약품 경제적 이익은 7229억 원이다. 임상시험 4799억 원(3625건), 제품 설명회 2222억 원(135만5063건), 시판 후 조사 136억 원(5193건), 학술대회 71억 원(762건) 순으로 확인됐다.
법 개정에 따라 제약회사들은 올해 6~7월 지출보고서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했다. 이후 심평원이 해당 보고서에 대한 비식별 처리를 한 후, 12월 내에 공개할 예정이다. 공개 시기는 이달 20일께로 예상된다.
지출보고서에는 의약품·의료기기 공급자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은 요양기관 및 학술대회 지원 정보, 제품설명회 참여자에 대한 제약회사별 지원 금액 등이 담긴다.
다만 개인정보 노출 우려가 있는 의료인들의 실명은 공개되지 않는다. 실명이 공개됐을 때의 부작용 등을 고려해 식별할 수 없도록 처리하기로 했다. 임상시험도 제약회사의 중요한 영업비밀 중 하나인 만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올해 말 첫 지출보고서 공개를 앞둔 만큼 제약업계에서는 첫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 제출인 만큼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주최로 지난달 22일 열린 2024년 하반기 윤리경영 워크숍에서는 이러한 목소리 조언이 나왔다. 이날 강한철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오랜 준비 끝에 지출보고서 공개제도를 시행한 미국에서도 거래내역 31%가 오류로 나타났고, 미국의사협회 측은 의료인의 검토기회 부족, 데이터 부정확성 등을 주요 문제로 지적했다”면서 “한 번 공개된 지출보고서의 경우 정정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약사법 및 형법 위반 등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제공 금액과 항목 등을 증빙자료와 대조하면서 정확하게 기입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부는 지출보고서가 합법적인 경제적 이익 제공 방법이지만, 국민이 자칫 ‘리베이트’로 오해할 수 있다고 판단해 법적으로 제공 가능한 지출이라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지출보고서 공개는 컴플라이언스 측면에서 불법 행위 사각지대를 줄이고 의약품 유통 과정의 투명성을 올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면서도 “어느 회사가 의료인에게 많은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는지 정보가 공개되면서 적법한 영업·마케팅 활동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