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법 한 차례 논의됐을 뿐
52시간제·보조금 여야 이견 첨예
내년도 예산안 등 대치 국면 걸림돌
미국 정부가 인공지능(AI) 핵심 반도체 가운데 하나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중국 수출을 제한하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이들을 지원할 ‘반도체 특별법’ 논의는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별법을 둘러싼 세부 사안에 여야가 극명한 대립 양상을 띠는 데다, 여야의 정치적 대치가 벼랑 끝으로 치달으면서 난항이 예상된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에 발의된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의 ‘반도체 특별법’ 논의는 지난달 21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에서 한 차례 논의된 것이 전부다.
당시 국민의힘 고동진·박수영·송석준·이철규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태년·이언주·정진욱 의원이 각각 발의한 총 7개 법안을 놓고 심사했었다. 논의는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제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을 담은 이철규 의원안을 중심으로 두고 진행됐다.
‘근로기준법 법령에도 불구하고 당사자 간 서면합의로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 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에 관하여 별도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라는 조항에 김성환 의원은 “여러 가지 예외 규정을 이미 근로기준법에 두고 있다”며 “다른 사회적 논쟁이 생기지 않도록 아예 조항 자체를 들어내는 게 어떨까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국민의힘은 “업계 의견을 반영해 연구개발(R&D) 인력을 주52시간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맞섰다. 산업부 역시 업계 고충을 들어 뜻을 모아달라 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다음 회의로 넘겼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보조금 지급’과 관련해서도 지급 범위와 방식을 두고 여야는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인프라에 대해 지원해주는 재정 지원이 있어 ‘보조금’ 범위가 겹칠 수 있단 우려에서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의 반도체 특별법에서 ‘보조금’이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점도 문제가 됐다. 박성태 산업부 1차관은 “미국의 CHIPS and Science Act도 확인을 다 하고 있는데, ‘보조금’이란 표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다 지양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향후 통상 과정에서 ‘보조금’ 표현이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추후 논의키로 했다.
여야 지도부는 모처럼 반도체산업 발전에 한 목소리를 냈지만, 좀처럼 논의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 산자위 관계자는 “예산안 정국으로 들어선 데다, 여야 강대강 대치가 극심해 논의 자체가 뒤로 밀리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여야는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샅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중재로 민주당이 밀어붙인 감액 예산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이 보류됐지만, 여야는 좀처럼 협의를 못 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야당의 감액안 철회”를, 민주당은 “정부·여당의 증액안 제출”을 고집하는 형국이다. 10일 본회의에서는 김건희 여사 특검법 재표결, 채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실시계획서 철로 여야 관계는 더 경색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