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어 ‘기업 역동성 제고 및 신산업 촉진을 위한 경제 규제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정부는 해야 할 일을 하겠다”고 했다. “경제팀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소와 같이 뚜벅뚜벅 걸어나가겠다”고도 했다. 정국 불확실성이 여간 크지 않지만, 힘이 닿는 한 기업 애로를 해결하고 국가 경제를 살리는 과업을 내버려 두진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기업 현장밀착형 36개 과제가 수술대에 오른다. 병역지정업체 평가기준을 완화해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인력난을 해소하는 게 대표적이다. 전문연구·산업기능 요원을 적절히 확보하는 방안도 마련한다. 해외 투자 활성화를 위해 복잡한 신고 절차나 요건은 폐지·완화한다. 해외 직접투자 시 1년 내 사후보고 가능 금액 기준을 10만 달러로 2배 상향하는 방안도 있다. 국내 법인의 해외 지점·사무소 설치 요건(외화 획득 실적)은 없애기로 했다. 연구개발(R&D) 인재 육성 지원을 위해 기업 부설연구소 연구원이 본사 소재지와 상관없이 대학 계약학과에 입학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도 손본다.
차세대 먹거리로 기대되는 ‘K-방산’ 수출 규제도 걷어낸다. 방위사업청은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앞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정비용 무기체계 수리 부속품의 수출 허가를 간소화한다고 밝혔다. 방산 분야 첨단기술 R&D 투자 세액공제 비율 확대(20%→30%)도 추진한다.
국가 상황이 엄중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 경제성장률(GDP) 갭(실질GDP-잠재GDP)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6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해 잠재성장률(2.0%)이 미국(2.1%)에 뒤지기도 했다. 미국 경제 규모는 우리나라 15배가 넘는다. 소형 고속정이 초대형 항공모함보다 느리게 기동하는 꼴이다.
규제는 경제 기초체력을 갉아먹는 암세포나 다름없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2900여 건의 규제 개선이 이뤄졌다. 국무조정실은 이에 따른 투자 창출과 매출 확대 등으로 약 148조 원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기업 투자, 일자리 창출을 막는 덩어리 규제, 변화에 더딘 낡은 규제, 숨은 규제가 여전히 많다. 과감히 손질하지 않으면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의 늪에 빠질지도 모른다.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국정 혼란상이 극에 달해 있다 하더라도 규제 개혁의 바퀴는 굴러가야 하는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세이브 아메리카’ 캠페인의 하나로 과도한 규제 철폐를 내걸었다. 정부효율부(DOGE)를 만들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로이반트사이언스 창업자인 비벡 라마스와미가 이끌게 했다. 규제의 미로에서 고생한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난제 처리를 맡긴 것이다. 세계 1위 경제 대국도 이렇듯 규제 개혁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데, 정작 갈 길 바쁜 한국은 4류도 못 되는 정치 리스크에 발목이 잡히게 된 신세다. 어처구니가 없다. 하지만 규제 개혁의 바퀴를 꾸준히 굴려나가면 희망의 불씨는 살릴 수 있다. 경제팀의 분발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