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운영 100%·기자재 70% 국산화…국내 첫 공급
'설계' 한성크린텍 "O&M 기회필요…문호 열어달라"
정부 "2026~30년 후속 R&D…31년 플랫폼센터 조성"
“반도체 물 기술은 초순수(Ultrapure Water)가 ‘끝판왕’입니다. 그동안 외국산에 의존했지만, 국내 기술로 생산된 초순수로 반도체 웨이퍼를 만든 건 의미가 큽니다”
박재현 환경부 물관리정책실장은 9일 경북 구미 SK실트론 제2공장에서 환경부 주최로 열린 ‘초순수 국산화 실증플랜트 통수식’에서 본지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환경부는 이달 해당 공장 내 설치·운영되는 초순수 실증플랜트에서 설계·시공·운영 기술 100%, 핵심 기자재 70%를 국산화해 반도체 공정에 국산 초순수를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하루 최대 1200톤(t)의 초순수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최종 생산까지 20~30여 개 공정을 거쳐야 하는 초순수는 물 속 유기물·이온 등을 제거한 순수에 가장 가까운 물로, 반도체 표면의 각종 부산물 등 불순물 세척에 사용된다. 반도체 산업 외에도 의료·바이오, 화학,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에 쓰이는 필수 자원이다.
다만 초순수를 생산하려면 이온물질 농도를 1ppt(1조분의 1) 이하, 용존산소 등 물속 기체 농도를 1ppb(10억분의 1) 이하로 만드는 고도의 수처리 기술이 필요해 일부 국가만이 생산 기술을 갖고 있다.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초순수 설계 국내 점유율 100%에 가까운 일본 구리타·노무라 등 일본기업에 의존했고 관련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시공·운영 분야도 미국·일본 등의 무대였다. 초순수 시장 규모는 2021년 국내 2조2000억 원, 해외 28조 원에서 2028년 국내 2조5000억 원, 해외 35조500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초순수의 국산화 필요성을 느낀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2021년 4월부터 초순수 국산화를 위한 ‘고순도 공업용수 국산화 기술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내년에 마무리되는 이 사업에는 국고 324억5000만 원을 포함해 총 443억4000억 원이 투입됐다.
초순수 실증플랜트는 자체 초순수 설계기술을 보유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3년 국가 연구개발(R&D)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된 수처리기업 한성크린텍이 설계·시공을 맡았다. 한성크린텍은 이 기술로 환경부 국책과제 기업에 선정됐고 2022년 SK실트론과 836억 원 규모 초순수 EPC(설계·조달·시공)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5월부터 순수 국내기술로 반도체 공장에 초순수를 성공적으로 공급했다.
배관기업 진성이앤씨는 실증플랜트 공급 배관, 핵심 기자재는 삼양사(이온교환수지), 에코셋(자외선 산화장치), 세프라텍(탈기막)이 맡았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 수공)는 전반적인 사업 운영을 맡았다.
이 사업을 통해 국내 최대 반도체 웨이퍼 생산 기업인 SK실트론은 올해 12월부터 내년까지 국산 기술로 생산된 초순수를 24시간 연속 공급해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를 생산하게 된다. 이렇게 생산된 웨이퍼는 국내 반도체 기업에 공급되며, 해외 수출길도 열렸다. 내년 사업 종료 이후에는 실증플랜트 운영이 SK실트론에 이관된다.
박 실장과 구자영 K-water 기획부문장, 김영기 환경산업기술원 원장 직무대행, 조용준 SK실트론 부사장, 박종운 한성크린텍 대표, 박종오 진성이앤씨 대표 등 사업 주요 관계자는 초순수 통수식 직후 안전모를 착용한 채 실증플랜트를 시찰했다.
시찰 과정에서 업계는 정부에 보다 충분한 기술 개발·적용 기회 확대를 요청했다. 박종운 한성크린텍 대표는 박 실장에게 “플랜트 설계·시공은 100% 국산화됐고 품질도 일본과 경쟁할 수 있지만 업력이 짧다보니 운영 노하우가 필요한데 수공 등에서 기술 확보에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박 실장이 “수공이 기업과 같이 하는 것을 원하는 것인가"라고 묻자 박종운 대표는 “문호가 열리지 않아 어려운 점이 있는데 수공이 참여하는 컨소시엄(공동도급)을 했으면 좋겠다”며 “우리뿐 아니라 많은 국내기업이 우수한 기술은 있어도 O&M(유지보수)을 실제로 적용할 기회가 거의 없는데 기회만 주어진다면 기술자립도를 높여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국가 산업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환경부는 그간 확보한 초순수 기술을 고도화하기 위해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추진할 후속 R&D를 준비하고 있다. 2031년부터는 초순수 플랫폼센터를 구축해 기술개발·인력양성에 나설 계획이다.
박 실장은 본지에 “핵심 기자재 국산화는 아직 70% 정도로 아직 더 해야 할 것들이 있고 막·배관기술도 매우 중요하다. 초순수 산업을 더 키우기 위해 후속 R&D와 플랫폼센터를 기획하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약 30조 원의 시장 규모도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다. 우리 초순수 국산화 기업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