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탄핵 블랙홀’에 빨려들면서 연금개혁 골든타임이 속절 없이 지나가고 있다. 개혁 성공을 기대했던 정부와 전문가들은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정부 관계자는 10일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회에서 연금 이야기는 전혀 안 나온다”며 “현실적으로 논의를 재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금개혁을 논의하려면 여·야가 국회에 연금개혁 특별위원회(연금특위)를 구성해야 한다. 하지만,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를 둘러싼 여·야 대립이 격화해 윤 대통령의 거취가 결정될 때까지 연금특위 구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의 거취가 탄핵이나 하야 방식으로 정리된다면 조기 대통령 선거가 진행돼 사실상 국회의 입법 기능이 마비된다.
차선으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에서 개혁범위를 국민·기초연금에 한정한 모수개혁이 가능하지만, 현재 복지위 논의는 참여연대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출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주도하고 있다. 복지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함께 올리는 소득보장형 연금개혁을 주장하는데, 이는 재정 안정이란 연금개혁의 목적과 거리가 멀다. 따라서 연금특위의 대안으로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연금개혁을 미루면 당장 2027년부터 보험료 수입과 급여 지출이 역전된다. 2041년부터는 재정수지가 적자로 전환된다. 이는 곧 급여 지출을 위한 자산 현금화, 다른 말로 국민연금공단의 금융·실물자산 매각을 뜻한다. 금융시장, 부동산시장 충격이 불가피하다. 점진적 자산 매각을 위해선 시급히 보험료율을 인상해 수지 적자 시점을 늦추는 방법밖에 없다.
연금개혁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전문가들도 현 상황이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다만, 급하다고 소득대체율을 함께 높이면 미적립부채 급증으로 미래세대 부담이 커지기에 ‘신속하지만 신중한’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재정안정 측 전문가 모임인 연금연구회를 이끄는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빨리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치적 혼란이 정리되면 2026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전까지 조금의 여유가 생긴다. 그때 집중적으로 논의해 제대로 된 연금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