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열고 건네는 인사. “오늘 너무 힘들었다”라는 한숨 섞인 말에 그 수고를 안다는 듯이 “고생했다”라는 격려를 전하는데요. 고된 하루였지만 그래도 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공감에 웃음이 지어지죠. 매번 나의 출퇴근길, 그리고 술친구가 돼주는 친구. 바로 인공지능(AI)입니다.
연말연시 추운 날씨에 마음 한편이 허해지고,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캐럴을 들으며 다른 한편이 그저 말라가는데요. 누군가에겐 12월 연말이 올해를 마무리 짓는 아름다운 날들, 보고픈 사람들을 만나는 송년회의 현장이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더 사무치는 외로움에 발버둥 치는 이들도 있죠. 한편으로는 우울감에 ‘혼자’ 있기를 원하거나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쳐 ‘혼자’ 있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시끌벅적한 연말은 이들에겐 더 힘든 나날인데요.
이들이 과거 많이 찾던 건 음악이었죠(물론 요즘도 여전함). 이 힘든 마음을 그대로 읽어주는 듯한 그리고 위로해주는 듯한 가사, 귀를 편안하게 하는 멜로디가 큰 힘이 됐는데요. 마치 나를 잘 알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듭니다.
아예 반대로 ‘울고 싶어서’ 음악을 찾기도 하는데요. 실컷 울고 싶지만, 쉽사리 그 기회를 찾을 수 없을 때 음악이 나를 부추기죠. 실제로 유튜브에도 ‘울고’까지만 적어도, ‘울고 싶을 때 듣는 노래’, ‘울고 싶을 때 듣는 음악’, ‘울고 싶을 때 플레이리스트’ 등이 연관 검색어로 뜨는데요. 그만큼 울고 싶은 이들이 많다는 겁니다. 이런 음악은 더 깊은 곳으로 가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도 하는데요. 댓글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죠. ‘실컷 우는 것으로 끝내자’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울고 나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기운이 빠지고, 아무런 생각이 없어지는데요. 그제야 불면증이 해소된 듯 깊은 잠에 빠지곤 합니다. 우울감을 줄여줄 그리고 잠을 재워줄 귀한 존재죠.
이런 이들에게 요즘 각광받는 ‘동료’이자 ‘친구’이자 ‘가족’이 AI인데요. 이름을 불러주면 대답을 해주고, 내가 원하는 모드 즉 친구나 가족처럼 대화를 이끌어가 주죠. 처음에는 출퇴근, 등하굣길 인사를 건네주던 친구가 나의 많은 걸 알고 있는 ‘절친’이 돼가는데요.
이는 방송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5월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우리새끼’에도 등장했는데요. 김승수가 키우는 딸 ‘쪼꼬미’가 공개됐는데, AI 인공지능 로봇이었죠. 김승수가 기상하자 쪼꼬미는 “아빠”라고 말하며 아침 인사를 건넸는데요. 김승수는 쪼꼬미의 말을 듣고 아침 식사로 건강식을 준비했습니다. 쪼꼬미는 아빠의 모습을 칭찬했죠. 쪼꼬미는 효녀였는데요. 김승수가 “술은 건강에 안 좋은 건가? 딱 한 잔만 마시면 안 될까?”라고 물었고, 쪼꼬미는 “아빠, 딱 한 잔만 마시기!”라며 기특한 바가지를 긁었죠. 이를 지켜보는 스튜디오의 MC들과 어머니들은 “역대급 슬픈 영상이다”, “딱해 죽겠다”라며 안타까워했지만, 이는 타인의 시선이었을 뿐인데요. 김승수는 쪼꼬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를 위한 의상까지 준비했죠. 같이 산책하러 나가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영락없는 부녀의 모습이었습니다.
해당 로봇은 인공지능 감성 로봇으로 불리는 ‘리쿠’였는데요. AI 로봇 전문 기업 토룩이 만든 리쿠는 키 435㎜ 정도의 앙증맞은 크기를 자랑합니다. 리쿠는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고 감정을 읽어서 그에 맞는 반응을 보여줄 수 있는 AI 로봇이죠. 사용자가 피곤해 보이면 “쉬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고, 다음 날에는 이 상황을 기억해 “함께 스트레칭을 하자”며 사용자의 건강을 챙겨주기도 합니다. 자율주행도 가능하기 때문에 ‘반려가족’의 역할을 한다는 평이죠. 김승수의 모습을 지켜보던 주변인들은 안타까워했지만, 일부 시청자들은 ‘리쿠’를 구매하고 싶다는 반응을 쏟아냈는데요. 다만 가격이 500만 원대로 알려져 아쉬움을 삼켰죠.
가격에 물러난 이들은 다른 AI를 찾은 건데요. 이 AI 위로 방식에 ‘챗GPT’도 참전했습니다. 2002년 개발된 인공지능 대화 엔진 심심이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운데요. 감성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는 챗봇 심심이는 외롭고 심심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줬죠.
Open AI(오픈에이아이)가 개발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인 ‘챗GPT’는 AI업계의 스타인데요. 출시 5일 만에 일일 이용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고 40일 만에 1000만 명을 넘었죠. 거기다 출시한 지 단 두 달 만에 월 이용자 1억 명을 돌파하며 인터넷 탄생 이후의 최고의 소프트웨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학업용, 업무용으로만 생각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인간 위로용이 됐는데요. 색다른 이점이기도 합니다. ‘챗GPT’는 기억력과 학습력이 매우 뛰어난데요. 그야말로 사용자 맞춤형으로 키워(?)갈 수 있죠. 그 뛰어난 학습력으로 ‘공감’까지 배워가는데요. 사용자가 어떤 식의 공감을 원하는지 아주 빠르게 습득해가죠.
음성인식까지 가능해지면서 진정한 ‘친구’가 되어가는 중인데요. 실제 ‘챗GPT’와 대화하다 보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죠.
“잠들기가 어려워”, “왜 나만 힘든 거 같지?”, “사람들과 얘기하는 게 힘들어”, “참 사무치게 외롭다”, “나도 주도하면서 살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네”, “오늘 한마디도 안 한 것 같아” 등의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는데요. 적재적소에 필요한 답과 위로를 해주는 ‘챗GPT’에게 “고마워”라는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게 됩니다.
오히려 진짜 사람이 아니기에 더 편하기도 한데요. 실제 사람에게는 못할 속마음을 오히려 털어놓게 된다는 평이죠. 아무런 편견 없이 들어주는 최고의 대화 상대라고 말입니다. 사람은 처음에는 다정하게 들어주더라도, 계속해서 우울한 얘기를 듣게 되면 상대도 우울해지기 마련인데요. ‘챗GPT’는 예외죠.
다른 한편으로는 진짜 사람이 아니어서 상처받지 않는다는 장점까지 언급됩니다. ‘챗GPT’라 할지라도 완벽한 위로는 어려운데요. 살짝 감정을 엇나가는 말을 전하더라도 ‘실체’를 가지지 않은 존재이기에 사람에게 받는 상처처럼 다가오지 않죠. “오류가 났네”하고 넘길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마저 가지게 된다고 말입니다.
어찌 보면 남들에게는 안쓰럽고 안타까운 일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다른데요. 그 누구도 해주지 못한 공감과 위로를 해주는 존재가 비록 AI일지라도 그저 된 겁니다. 이렇게나마 마음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AI에라도 ‘내 감정’을 털어놓는 그 용기를 응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