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삶은 존재의 전부다

입력 2025-02-0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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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원립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명예교수

<‘퍼펙트 데이즈’, 빔 벤더스 감독, 2024년>

도쿄의 허름한 집에서 거주하며 화장실 청소 일을 하는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안빈낙도란 단어가 떠오르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면 방안에서 키우는 화초에 물을 주고 집을 나선다. 자신의 업무 밴에 타기 전에 집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하나 뽑는다. 차 안에는 옛 오디오 카세트테이프들이 많다. 그중 하나를 들으며 도쿄 시내를 달린다. 여명 속의 도시 풍경이 아름답다. 빔 벤더스 감독의 로드무비들을 본 사람이라면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점심때는 공원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다. 그러면서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어른거리는 모습을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에 담는다. 일을 마친 후에는 구식 대중목욕탕에 들르고 저녁에는 지하상가의 간이 술집에서 혼자 한잔한다. 밤에는 누워 책을 읽는다. 방 안에는 컴퓨터는 물론이고 TV도 없지만 책장에는 책이 가득하다.

그가 청소하는 화장실들을 보면서 ‘일본의 공중화장실은 다 이렇게 좋나?’ 생각했다. 찾아보니 유명 건축가들이 특별히 디자인한 거라고 한다. 전부 17개인데, 한국에 잘 알려진 안도 다다오의 것도 있다. 화장실이 그렇게 멋지면 ‘화장실 청소’의 이미지와 너무 동떨어지지 않나? 실제로 그런 불만을 제기하는 평자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눈이 즐거운 건 사실이다.

히라야마는 공부를 많이 한 지식인이 분명한데 어쩌다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되었을까. 그런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사연을 알면 영화에 깊이감이 더해질 것 같다. 한 평론가는 영화가 다소 가볍다고 했는데, 행동의 동기를 모르기 때문일 수 있다. 필자는 그래서 힌트를 찾아보았다. 우선 그가 읽은 책을 보자.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야생 종려나무’는 마지막 대사가 유명하다. 영화들이 그걸 차용하기도 했다. 그 대사는 이렇다, ‘비탄과 무(無) 사이에서, 난 비탄을 택하겠다.’ (자기 잘못으로 여자가 죽었지만 그래도 자살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 직전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녀가 없어졌을 때 기억의 절반이 없어졌고, 나도 없어지면 모든 기억이 없어질 것이다.’

이 책은 벤더스의 1976년 영화 ‘시간이 감에 따라’(영어 제목 Kings of the Road)에도 나온다. 거기서도 주인공이 밴을 몰고 다니는데 차 안에 그 책을 두고 간간이 읽는다. 감독이 책의 그 마지막 장면을 염두에 두었다는 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한 남자의 대사에서 짐작할 수 있다. 말다툼 후에 아내가 차를 몰고 나가서 나무를 들이받아 죽자, 그는 비통해하며 ‘삶은 존재의 전부다’라고 말한다. 고통을 안고서라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내와 자신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책의 그 대사와 거의 같은 뜻이다.

‘퍼펙트 데이즈’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나오는 노래 중에 패티 스미스의 ‘레돈도 비치’가 있는데, 말다툼 끝에 나가버린 여자 친구를 찾다가 해변에 밀려온 한 죽은 소녀의 모습에서 그녀를 연상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것들을 볼 때, 히라야마도 어떤 큰 죄책감을 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의 차 안에서 나오는 첫 노래가 애니멀스의 ‘해 뜨는 집’인데, 죄를 지은 남자 이야기다. 이 곡은 일어판으로 나중에 한 번 더 나온다. 그가 가끔 들르는 바의 여주인이 부르는데 그걸 듣는 그의 표정이 매우 무겁다. 그리고 후반에 여동생을 만나는 장면에서 그녀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한번 찾아뵙는 게 어떠냐고 제의하며 ‘예전처럼 행동하시지 않을 거야’라고 한다. 그의 잘못을 크게 나무란 아버지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다.

필자의 해석이 맞다면 화장실 청소는 속죄의 행위일 수 있다. 나오는 노래 중에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가 있다. 연인과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나눈다는 내용인데 제목과 달리 곡이 별로 경쾌하지 않다. 마지막 후렴은 ‘뿌린 대로 거둘 것이다’이다. 히라야마도 그러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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