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25만원, ‘여의도 사투리’ 아닌 ‘경제 언어’로

입력 2025-02-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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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강원도 한 여행지에서 겪었던 일이다. 지역 관광지에 입장하려고 현금으로 입장권을 샀다. 그런데 매표소 직원으로부터 받은 거스름돈에 지역화폐 1000원짜리 두 장이 더해져 있었다. 지역화폐를 사려고 했던 게 아니어서 직원에게 “왜 주는 거냐”고 물었다. 대답으로 한 말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지역 활성화 차원으로 드리는 거다”라는 내용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지역화폐 2000원이 공짜로 생긴 것이다. 그러나 여행 동안 지역화폐를 쓰지는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여행짐 정리를 하면서 두 장짜리 지역화폐는 그저 종잇조각이 됐다.

야당은 민생회복소비쿠폰 추진 배경으로 가계부담 완화와 내수 진작을 내세우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두 가지 목적은 서로 어긋난다. 가계부담 완화와 내수 진작은 궤를 같이할 수 없다. 가계부담 완화는 지갑에서 돈이 덜 나갈 때 체감한다. 반면 내수진작은 사람들이 돈을 쓰도록 만들 때 기대할 수 있다.

금융당국 고위 임원 출신과 최근 만난 자리에서 ‘민생지원 25만 원’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25만 원이 내수진작을 위해 쓰인다면 100만 원을 쓰려고 했던 사람이 25만 원(소비쿠폰)까지 포함해 125만 원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25만 원을 받은 사람들은 당초 쓰려고 했던 100만 원에서 그 25만 원을 뺀 75만 원만 쓰려고 할 것이란 얘기다. 결국 25만 원의 쓰임새는 정책의 어느 목적도 제대로 달성하기 어렵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정부의 보편적 지원의 명암은 이미 드러났다. 그 당시 정부 지원금이 애초의 취지에 맞지 않게 쓰일 수 있다는 목격담 내지 경험담들이 숱하게 쏟아졌다. 생계에 위협을 느낀 자영업자에게 도움이 됐으면 했던 지원금은 누군가에겐 가게 인테리어를 새롭게 하는 데 쓰였다는 후일담도 떠돌았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 등을 겪으면서 경제주체들의 경험치도 그만큼 쌓였다. 진짜 필요한 정책에 관한 판단의 기준도 엄격해졌다. 환심을 사려는 쉬운 길을 택한 정책이 갈수록 논란을 마주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년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치권의 여의도 사투리와 경제·금융권의 경제 언어 간 장벽은 낮아졌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촉발한 경제 상황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두 언어는 섞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추가경정예산(추경)에 대한 한마디 발언을 빌미로 여당 지도부가 한은을 방문한 모습에서 두 언어가 얼마만큼 뒤섞여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 이어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도 추경 규모에 대해 15조~20조 원이 적정하다는 의견을 냈다. 30조~35조 원 규모의 추경에 대해서는 “진통제를 너무 많이 쓰면 지금은 좋지만 나중에 안 좋은 것처럼 적절한 양의 진통제를 써야 한다”고 언급했다.

수십조 원에 달하는 정부 곳간을 쏟아내야 하는 정책을 논할 때는 여의도 사투리가 아닌 경제 언어로 접근해야 한다. 난국인 만큼 정부, 국회의 신뢰가 절실하다. 정부의 곳간은 도움을 정말 필요로 하는 곳에 집중돼야 한다. 민생지원 정책은 얼마든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안이다. 그런 정책이 지금은 대기업 총수도 지원받을 수 있냐는 힐난을 받는 졸속책으로 취급받는 이유를 여의도 사투리가 아닌 경제 언어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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