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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경기도 양주시의 A 은행 지점을 찾은 70대 여성 노인이 두리번거리다 안내데스크에 있는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한참 동안 서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던 직원이 큰 소리로 말했다. “기계에서 하시려면 비밀번호 아셔야 하는데, 모르신다는 거죠? 창구 가셔야 해요. 번호표 뽑아 주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금융권에서 시니어는 점점 더 중요한 고객층이 되고 있다. 시대적 흐름인 고령화의 필연적 귀결이다. 5년 전만 해도 4대 시중은행에는 40대 고객이 가장 많았지만 2024년 말에는 60대 이상 고객이 앞질렀다. 해를 거듭할수록 A 은행 사례처럼 지점에서 어려움을 겪는 고령자의 모습은 더욱 흔한 풍경이 될 것이다.
노인들이 점점 부유해지는 점도 시니어 고객층의 중요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노인 가구의 연간 소득은 3469만 원, 금융자산 규모는 4912만 원 등으로 조사를 시작한 2008년 이후 꾸준히 증가세다.
그러나 고객층이 두꺼워지고, 자산 규모가 커지는 것과 ‘소외’는 다른 문제다. 노후 자금이 충분한 노인도 금융 시스템에서 멀어질 수 있다. 옆 동네 은행 점포를 찾아 움직일 수 없고, 모바일 뱅킹 이용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체 고령자 가구의 38%에 달하는 ‘혼자 사는 고령자’ 중 19%는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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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돈 되는 건강한 노인' 만큼 은행이 신경 써야 할 고객층은 ‘소외되는 노인’이다. 봉사 활동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잠재고객’인 이들을 지원해 건강한 시니어 고객을 확보하면 은행에도 이득이다.
금융권은 더 정교한 시니어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시니어 전용’ 상품 중 비대면 전용 상품의 비중이 과도하게 높은 것은 아닌지, 지점을 방문한 고령자에게 비대면 거래 전용 혜택을 충분히 안내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1년에 한두 번에 불과한 모바일 뱅킹 교육을 앞세워 ‘고령층 대상 금융교육에 힘쓴다’고 포장하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돈 있는 노인이 자녀에게 재산을 뺏기는 ‘금융착취’ 위험과 보이스피싱 등 금융 사기 피해를 방지할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금융당국도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야 한다. 민간 기업이 자율적으로 노력하기만 바라면 안 된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2020년 ‘고령친화 금융환경 조성방안’의 일환으로 ‘노인금융피해방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지금은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금융사기 방지기능이 있는 고령자 전용카드 상품 출시 활성화도 약속했지만 이후 당국에서도, 카드사에서도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다는 의미다. 고령자 친화적인 금융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다시 움직일 이유가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