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옥 칼럼] ‘토크빌의 해독제’ 절실한 한국 민주주의

입력 2025-02-2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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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다수결 원칙’ 민주주의 근간이지만
‘다수에 의한 폭정’ 폐해는 막아야
민간결사들 나서 견제와 균형 찾길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은 1827년 젊은 법관으로 출발하여 뒤에는 저술을 통해 철학자, 정치학자, 사회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였다. 그가 그토록 유명해진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De la democratie en Amerique)라는 저서를 펴내면서였다. 2권으로 되어 있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1835년에 1권이, 1840년에 2권이 발표되었으며 토크빌을 사상가와 저술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로 인해 1841년에는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뒤에는 잠시 프랑스의 의회 의원과 외무장관을 지내기도 하였다.

당시 프랑스는 제정(帝政)과 공화정이 반복되는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독립 이후 미국에서는 안정적인 민주주의가 굳건히 발전하고 있었다. 민주주의의 이론을 개진한 것은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나 몽테스키외(Charles-Louis de Montesquieu, 1689~1755) 같은 프랑스의 사상가들이지만 정작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한 것은 미국이었다. 역사적으로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잠시 실시되던 시기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현대적인 의미에서 처음 민주주의를 구현한 것은 신생국가 미국이었다.

토크빌은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는 미국을 여행하고 싶었다. 여행을 통해 실제로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고 미국의 지도자들 및 여러 주민과 만나고 싶었다. 대화도 나누고 그로부터 혜안도 얻고 싶었던 것이다. 토크빌은 그의 친구 구스타브 드 보몽(Gustave de Beaumont, 1802~1866)과 함께 미국의 교정(矯正)시설을 시찰한다는 명목으로 정부로부터 무급휴가를 얻었다. 1831년 4월 2일 르아브르(Le Havre) 항구를 출발하여 5주 뒤 미국 로드아일랜드 뉴포트 항에 도착하였다. 이들이 뉴욕을 떠나 프랑스로 돌아간 것은 다음 해 2월 20일이었다.

토크빌과 보몽은 동부의 여러 도시와 당시 미국에 새롭게 편입된 영토였던 미시간과 미시시피강 동쪽 중부의 미개척지를 두루 여행하였다. 그들은 전직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 현직 대통령 앤드루 잭슨을 포함하여 상?하원 의원, 전직 국무장관, 하버드 대학 총장 등 많은 유명인사와 그보다 훨씬 많은 일반인 및 원주민을 만나 대화하였다. 그와 같은 여정의 결과가 ‘미국의 민주주의’였다. 토크빌의 저서는 출간되자마자 큰 주목을 받았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뒤에 여러 학교의 교과서와 독서목록에 포함되었다.

굴곡은 있겠지만 미래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라는 것을 토크빌은 믿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토크빌이 염려한 것은 ‘다수결 원칙’의 후과였다. 평등에 뿌리를 둔 다수결 원칙이 권력의 원천인 국민을 오히려 무력하게 하고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과 마찬가지로 폭정에 빠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시민의 이름으로 자행된 공포정치에 할아버지를 포함하여 많은 일가친척을 기요틴에 잃은 그로서는 ‘다수의 폭정’(tyranny of majority)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수에 의한 소수의 억압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미국에서 토크빌이 발견한 것은 다수결 원칙의 폐해에 대한 적지 않은 해독제가 헌법과 제도 및 종교에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와 같은 해독제 가운데에는 삼권분립에 따른 견제와 균형, 사법부, 양원제, 연방제, 교회가 존재하였다. 무엇보다도 토크빌은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민간 결사(結社)·협회(associations)를 발견하였다. 새로운 과업이 나타나면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영국에서는 귀족 가운데 누군가 나서지만 미국에서는 결사(혹은 협회)가 나서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와 같이 지어진 것이 미국의 병원, 학교, 교정시설이었다. 그리고 책을 나눠주고 교회를 세우며 멀리 선교사를 파견하는 것도 그와 같은 조직이었다.

토크빌이 염려한 바와 같이 민주주의는 결코 완전한 제도가 아니다. 민주적인 다수결에 따를 때 가장 큰 장점은 정통성 시비가 적다는 것이다. 그 이외에 민주주의가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하려면 토크빌의 여러 해독제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의 해독제는 잘 작동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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