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 칼럼] 조선시대 ‘상피제도’ 돌아보는 까닭

입력 2025-02-2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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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법대 학장ㆍ前 한국헌법학회 부회장

부자·형제 등 사적관계는 재판 배제
헌재 구성 ‘공정성 원칙’ 충족 못해
‘판사 회피’ 정한 유럽 판결 되새겨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변론이 종결되었다. 판결 선고만 남아 있는 상태인데, 대부분 탄핵인용인가 기각인가 하는 결론에만 신경쓰고 있는 중에 잊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헌법재판관과 관련한 재판 공정성 문제이다. 헌재는 심리 과정에서 대통령 변호인단의 기피신청을 재판관 전원일치 7 대 0으로 기각해 버렸다.

이유도 없었다. 재판관들에 대하여 각각 회피 의견을 제출했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아마도 헌재는 이것으로 재판관 구성에 관한 문제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한 재판관의 동생은 ‘민변’에서 ‘윤석열 퇴진 특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또 다른 재판관의 남편은 국회 탄핵소추대리인단의 공동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는 법인의 변호사로 재직 중이다.

기피신청 기각 후 헌재는 공보관을 통해 “재판관 배우자나 동생을 이유로 재판관을 회피해야 한다는 요구 등이 있는데, 단순히 주관적 의혹만으로는 부족하고 합리적이라고 인정될 만큼 객관적인 사정이 있어야 한다는 게 대법원과 헌재의 확립된 판례”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궤변이라는 말도 사치스러운 그냥 억지에 불과하다. 배우자와 동생은 객관적 사실이다. 주관적 의혹이 아니다.

재판에서의 공정성 여부는 주관적 요소와 객관적 요소 두 가지로 따진다. 주관적 요소란 판사가 개인적으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할 때 쓰는 기준을 말한다. 예컨대, 문형배, 이미선, 정계선 재판관 등 ‘우리법 연구회’와 같은 특정 이념 학습 동아리 일원들이 편향성을 떠나 공정한 헌법재판을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살필 때 주관적 기준을 따진다. 할 말은 많고, 심증도 있지만 주관적 기준으로 이들을 새삼 지적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객관적 기준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재판의 공정성을 따질 때 객관적 기준이란 재판부 자체가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 외부에서 보기에 공정해 보이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 유럽인권재판소(ECHR)의 경우 객관적 기준이란 법원의 구성 및 판사의 특정 행위가 외부에서 볼 때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유발할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고 본다. 판사와 소송 당사자 또는 변호인 사이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 관계는 이런 의심을 객관적으로 정당화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2009년 유럽인권재판소는 몰타 정부에 대하여 유럽인권협약상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관한 조항을 위반했다는 판정을 내렸다. 몰타 법원에서 재판장과 소송의 일방 당사자를 대리한 변호사 사이에 외삼촌과 조카의 친척 관계가 있음에도 회피하지 않고 판결을 내린 사안에 대하여 법원 구성 및 판결이 공정성의 원칙에 위반했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사실 사건 자체는 같은 아파트 위층과 아래층 주민 사이에 빨래를 너는 문제로 빚어진 것으로서 어떻게 보면 사소한 소송이었다. 어쨌건 이 소송으로 몰타 정부는 국제적 망신을 당했고, 이런 경우에는 판사가 회피하도록 소송법을 바꾸었다.

이 사건에서 유럽인권재판소는 재판의 외관은 그 자체로 일정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으며, “정의는 실현되어야만 할 뿐 아니라, 실현되는 것으로 보여야만 한다”고 하면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주사회에서 법원이 대중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고, 따라서 편파적인 태도에 대한 합리적인 우려가 존재하는 경우, 해당 판사는 회피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헌법재판소의 일부 재판관의 경우 외부에서 보기에 공정성을 의심할 만한 객관적 사유가 명백히 존재한다. 이것을 ‘주관적 의혹’ 운운하는 말 장난 정도로 넘겨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 재판에도 부자·형제·사위·장인 등의 관계에 있는 자는 서로 재판을 담당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상피(相避) 제도가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 대한민국 국격을 어디까지 망가뜨리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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