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산업화·민주화에 ‘법치화’ 더할 때

입력 2025-02-24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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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규 민간LNG산업협회 부회장

글로벌 에너지 관련 업무에 종사하다 보면 최근 우리나라 정치상황에 대한 의견 교환을 자주 하게 된다. 작년 말에는 홍콩에서 활동하는 에너지분야 변호사의 개탄스러운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국가신인도 더블A(AA)와 비상계엄은 도저히 연결될 수도, 납득하기도 어려운 조합이라는 국제사회 인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코멘트이다.

금년 초에는 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기업 중역의 걱정어린 우려에 급한 대로 낙관적으로 대답하였다. “한국이 불과 두 세대, 60년에 걸쳐 동서고금에 어느 민족과 국가도 감히 해내지 못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는데 이번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면서 이제 성숙한 ‘법의 지배’ 내지 ‘법치화(Due Process of Law)’가 정착될 것이고 금년 상반기를 지나면 한국의 트로이카가 완성될 것이다.”

트로이카 체제 제도화해야 선진국 완성

트로이카는 삼두마차를 지칭한다. 그런데 트로이카의 말들이 동일한 스타일로 달리거나 마차의 하중을 균등하게 나눠지는 것은 아니다. 가운데 리더가 몸집도 크고 나이가 좀 든 제일 힘센 말이다. 이 말이 마차의 하중을 오롯이 다 받고서 상대적으로 느리게 달린다. 이에 비해 양옆의 말들은 좀 더 젊고 몸집도 작지만, 전속으로 질주하는 기마병 모습으로 달린다. 이러한 과정에서 마차의 하중도 세 마리 말이 나누어 지게 되고 양쪽 질주하는 말의 원심력을 이용하여 광활한 벌판을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멀리 달릴 수 있는 트로이카 체제가 완성되는 것이다.

정책 현장에, 특히 산업정책에 몸담고 있다 보면 트로이카처럼 멋진 산업 시스템을 구현하는 정책 틀을 설정하게 된다. 산업형성 초기의 우리나라 자동차, 조선 및 반도체 그리고 업력이 다소 짧은 이차전지 산업에서도 그런 게 있었다. 트로이카 기업 체제가 국내적으로 유효경쟁과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면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엄청난 시장 기회와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혼자서 도맡는 독점구조나 서로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과점체제보다 트로이카 시스템이야말로 우리나라 산업을 보다 건강하게 그리고 더욱 멀리 바라보고 전력 질주할 수 있게 만든 동인이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과연 지금 우리나라의 산업화 현주소는 과거 영국, 미국 그리고 뒤를 이은 독일과 일본이 축적한 산업강국의 면모를 명실상부하게 구현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급하고 빠르게 눈부신 성장을 이끈 한국의 산업화의 이면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충분한 제도화가 이루어졌는지, 시스템의 공정성·투명성 등에 미흡한 면은 없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된 듯하다. 아직도 한국의 산업화는 선진 산업강국과 비교할 때 지표상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또한 우리가 자부심을 가지고 말하는 한국의 민주화는 정부가 바뀌고 야당이 여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개도국 정치발전사에서 결코 쉽지 않은 모범 사례이다. 하지만 선진 민주국가와 비교할 때 한국의 민주화도 우리가 표면적으로 성취한 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는 게 작금의 정치상황에서 다시 한번 돌아보는 현실이다. 정당 시스템과 국민 대표성 그리고 주권 의식 등 우리가 이룩한 민주체제도 선진 민주국가에서 보기 어려운 성숙되지 못한 정치 행태가 드러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는 누가 뭐래도 인류 역사에 있어서 기적의 한 무대를 차지한 것도 사실이다. 국가의 대외 신인도가 최고등급인 더블A 수준에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비상계엄이라는 조합 때문에 우리가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를 폄하해서는 안될 것이다.

‘계엄痛’ 극복…‘법의 지배’ 확립 계기 되길

오히려 산업화와 민주화를 급하게 정신없이 추진하다 보니 법의 지배 내지 법치화를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최근의 정치적 상황에서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과연 우리가 일구어낸 산업화와 민주화 속에 적법 절차나 절차적 정당성 등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충분히 제대로 스며들어 있었는지 돌아보는 좋은 반성의 과정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현재의 정치상황은 시각에 따라 빨리 걷어치워야 할 먹구름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법치화라는 견지에서 절차적 정당성과 법에 의한 지배를 우리나라가 제도화하기 위해 거쳐야 할 더없이 소중한 터널로 인식할 수도 있다. 터널이 얼마나 더 갈지, 금년 상반기가 지나면 우리나라가 산업화, 민주화에 이은 법치화의 트로이카 체제를 제대로 제도화해 낼지는 우리 모두가 차분하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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